19~20세기의 제국주의는 영국과 프랑스의 항쟁이었다.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에서도 경쟁이 치열했으나 아시아에서도 영국은 인도를,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식민지로 경략했다. 19세기부터 누려온베트남에 대한 프랑스의 식민지배권을 1950년부터는 미국이 계승하고자 독립전쟁에 개입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베트남의 승리로 1975년 끝났다. 그 전쟁으로 1백만명 이상이 죽었다. 모든 민족문제가 그러하듯이 그것이 역사에 남긴 교훈은 민족에 의해 민족문제는 결정되어야 한다는 민족자결권의 확인이었다.
인도에는 간디가 있었고 인도차이나에는 호치민이 있었다. 영화 '간디'는 영국에서 영국인들에의해 제작되었으나 프랑스에서는 그런 '호치민'이 만들어진 적이 없다. 1960년대에 와서 프랑스에서는 누벨바그니 뭐니 하며 요란스러운 영화미학운동이 벌어졌으나 식민지에 대한 과거의 침략에 대한 반성은 볼수가 없었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독립운동(1954~1962)에 관한 '알제리전투'가 만들어졌으나, 그것은 알제리와 이탈리아의 협력에 의한 것이었지 그 알량한 누벨바그들이 나선 것이 아니었다. 단 하나, 장 뤽 고다르 모택동사상과 문화대혁명을 격찬하기 위하여 만든 '중국여인' 정도가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제3세계에 대한 유일한 관심이었으나 그것은 당시의 분위기에 편승한 것이지 역사적 반성에 근거한 것이라고는 볼수 없다.그런데 1992년 프랑스에서 '인도차이나'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프랑스인들이 만든 '간디'인가? '인도차이나'는 1992년 아카데미 외국영화상을 받아서인지 꽤나 그럴듯한 영화로소개되기도 하나 문제가 많다. 적어도 '간디'와는 비교는 커녕 같은 차원에 두고 말할 수도 없다. 도리어 옛 식민지를 그리워하고, 그것을 꿈꾸는 소위 서구식 오리엔탈리즘의 대표적인 영화로서 '연인'과 함께 '인도차이나'를 꼽을 수 있다.
그 배경은 프랑스가 식민지였던 베트남. 그리고 주인공들은 당시에 제국주의자인 고무농장 여주인, 그녀의 양녀인 베트남의 마지막 공주, 그리고 두 여자를 모두 사랑한 프랑스 장교이다. 영화는 그 세사람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당대의 베트남 사회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비교한다면 '아웃 오브 아프리카' 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베트남 판이라고 할까?주인공은 베트남 공주인 까미유가 결국은 공산주의자가 되어 베트남의 지도자가 되나, 왜 그녀가그렇게 되었는지를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프랑스남자를 찾으러 다니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정도의 막연한 설명이다. 영화는 식민지에 대한 한치의 회한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연인'의 그것과 극히 유사하다. 프랑스인들은 걸핏하면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추궁하나, 자신들도 아무런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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