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이테크문화유산-포석정(15)

사적 제 1호로 임금의 놀이터 혹은 별궁으로 알려진 포석정은 성남이궁(城南離宮)터라고도 한다.당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전각은 현재 없어지고 시를 읊으며 놀이를 했던 장소로 여겨지는전복모양의 돌 구조물만 남아있다.

신라 제49대 헌강왕이 포석정에서 놀이를 즐기고 있을때 남산의 신이 나타나 춤을 추자 왕도 따라 추어 어무상심무(御舞祥審舞)라는 신라의 춤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 927년에는경애왕이 이곳에서 잔치를 베풀다가 후백제 견훤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은 사연때문에 신라 천년의 역사가 막을 내린 곳으로 유명하다.

포석정(鮑石亭).

통일신라 경애왕이 열락에 빠져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애사를 담고있는 곳이다. 동·서양을막론하고 향락이 극에 달했던 시기는 문명이 최고조로 꽃피던 시절이기도 했다.경주 서남산 기슭에 자리잡은 포석정은 평화와 문명의 융성이 사치와 향락을 낳고 이것이 국가멸망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법칙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현재 별궁과 정자는 없어지고 전복형태의 돌홈만 남아있다. 이 돌홈은 포석계곡의 계류를 끌어들여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물이 돌홈을 따라 흘러가면 그곳에 술잔을 뛰우고 돌홈 주위에 앉은사람들은 술잔이 자기앞에 오기전에 시를 짓고 노래하며 즐기는 연희)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현대인에게 풍류와 애환의 대상으로만 인식되어 온 포석정은 수리학과 관개배수공학의 결정체다.

아주대 유동훈 교수는 "수로경사, 측면굴곡, 바닥과 측면의 파형조성 등 다양한 기법을 동원, 물과 술잔의 회돌이 현상을 만들어냈다"며 "이것은 물흐름에 따른 우연이 아니라 정밀한 수리학을계산에 넣지 않고는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수로경사가 급격히 변하는 지점이나 굴곡지점에서 수로폭을 확장하거나 파형을 만들어 관성력을만들었다가 제어할 줄 알았고 내측바닥면의 함몰을 조성, 술잔이 벽면에 부딪치지 않고 유유히흘러가게 한 유체역학을 이용했다.

포석정의 가장 대표적인 수리현상은 두 지점에서 나타나는 회돌이 현상. 서양에서 회돌이현상 또는 난류운동에 대한 관심은 포석정이 건조된 6백80년대보다 8백년이나 늦은 15세기 후반에 나타났다.

포석정에 들어갈 물 공급은 약 2.3km 상류에 있는 안골샘못에서 개수로나 송수로를 이용했다. 포석정 인근 높은 지대에 석재로 소규모 저수조를 만들어 이곳에 일단 물을 공급하였다가 연희에만물을 공급하는 장치가 있었던 것으로 구전되고 있다.

전체형상의 길이는 약 10m이며 폭은 약 7m 수로길이는 22m이다. 수로 폭은 최소 24cm부터40cm까지 다양한 변화를 보이며 수로의 평균 깊이는 20cm이다.

포석정의 비밀은 다양한 크기의 석재(66개)로 수로와 측벽을 치밀하게 만든데 있다. 측벽은 20cm정도의 높이에 15cm 폭으로 1천3백년이 흐른 오늘에도 변형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안정된 구조다.인입구간, 초반회돌이 구간, 후반회돌이 구간 등 4개부문으로 구분, 각 구간마다 독특한 흐름을연출하고 구간마다 끊어짐이 없도록 설계했다.

인입점 근처에 위치한 최고수로 바닥면과 출구점에 위치한 최저수로 바닥면의 고저차는 57cm 인데 초반부에 급경사를 이루고 마지막부분에는 오히려 역구배를 가지며 회돌이 부분은 완만한 구배를 가지고 있다.

초반 인입구간에서 1/10 정도의 급경사를 두어 충분한 관성력을 발생토록 했다. 인입구간에서 초반회돌이 지점까지 수로바닥과 측면을 파형으로 구성하여 과도한 관성력으로 야기되는 수면파를매끄럽도록 제어하였다.

후반회돌이 구간에 들어와 관성력을 재충전하기 위에 1/90의 완경사를 두었으며 측면이나 수로바닥도 매끄럽게 처리하여 두번째 회돌이 현상을 촉진하였다.

그러나 두 지점의 회돌이 방법은 판이하게 다르다. 첫번째 회돌이는 인입구간에서 생성된 과도한관성력을 파형의 벽면처리로 제어하고 수로 내측을 함몰시켜 원심력이 회돌이 현상에 초래하는지장을 감소시켰다.

반면 두번째 회돌이는 급한 횡굴곡을 구간앞에 만들어 약화되는 관성력으로도 뚜렷한 회돌이를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마지막 출구구간에는 완만한 역구배를 만들어 전구간에서 충분한 수심을유지시켜 주고 후반회돌이 구간의 유속을 적절히 조절하였다.

초반회돌이가 형성되는 지점은 내측 함몰이 유난히 많다.

이것은 물흐름이 원심력을 받아 바깥쪽으로 상승하는 것을 막을 뿐만아니라 원심력을 감소시켜회돌이 현상을 더욱 촉진하기 위한 것. 내측의 수로벽면이 역경사로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처리도단순한 미적취향으로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수리학적 측면인 회돌이형성 촉진을 위한 것이다.후반회돌이 구간은 90도의 급경사를 두고 내측함몰없이 거의 수평한 수로바닥을 만들었다. 특히출구구간에서는 1/50 역구배를 두어 흐름이 빨리 소진되는 것을 방지하였는데 이것은 후반회돌이구간에 후류(後流)효과를 주어 흐름을 상당히 저지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던 676년 경에는 저수지개발 및 관개배수사업이 대대적으로 추진되었다. 이것은 물의 흐름에 대한 역학적인 이해와 관개배수에 대한 설계기법 및 공사기법도 상당한 수준에이르렀음을 증명한다. 이의 연장선에서 포석정이 만들어졌다.

〈李春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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