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애아의 꿈

"맑고 고운 세계 우리들도 있어요"

아이들은 맑다. 아이들의 꿈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맑다. 맑지 않은 눈으로 보면'불편'하기만한 장애아들. 그러나 자신의 꿈을 또렷하게 말하는 장애아들의 눈빛은 혼탁한 세상의 눈으로는도저히 알 수 없을만큼 맑고 깊다.

광명학교(시각), 영화학교(청각) 등 장애아 특수학교 5개가 모여있는 대구시 남구 대명동 대구대학교 캠퍼스. 봄날 따뜻한 햇볕 속에서 아이들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옹기종기 모여서 까불어대고 있었다. 일반학교와 전혀 다를 게 없는 풍경.

광명학교 초등부 2년 한혜정양(9). 장래희망을 묻자 "선생님도 되고 싶고 화가도 되고 싶고"… 한참을 고심하다 종내에는 "피아니스트"라고 비밀스레 털어놓았다."예쁜 드레스를 입고 사람들 앞에서 연주해 박수를 받으면 정말 신날 것 같다"며수줍게 웃었다.

여섯살 때부터 배운 피아노.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은 체르니30번을 배우고 있다.

혜정양은 1학년때 점자를 배우고 지금은 점자책으로 일반학교 아이들과 꼭같은 공부를 하고 있다. 집에서는 영어회화 테이프를 들으며 영어공부도 한다. 우선 꿈은 선생님이기 때문에 공부를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야 한다는 것. 담임교사 김은실씨(24·여)도"혜정이는 공부에 쏟는 시간이많아 일반학교 같은 학년 애들보다 실력이 낫고 음악에는 뛰어난 소질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영화학교 고등부 1년 최지혜양(18). 어눌한 발음으로 한참을 공들여"미술선생님이 되고 싶다"고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말보다 먼저 미술선생님이 된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는듯 했다.입석여중 2학년때 판화, 포스터 등으로 몇차례 상을 탄 지혜양이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한것은 지난1월. 집 근처 학원을 다니며 정물화, 풍경화, 데생 등을 배우고 있다. 요즘은 세새대 육영회의 장애자 작품전시회에 출품할 정물화를 준비 중이다. 미술선생님 뿐만 아니라 영화학교 선생님들 모두 지혜양의 그림에 기대가 높다고 한 교사가 귀띔했다.'자신들만의 공동체' 특수학교안에서는 한없이 평화로운 장애아들. 그러나 이곳을 벗어나면 세상이 딴판이다. 자동차는 무서운속도로 달리고 눈빛들은 '이방인'처럼 쳐다본다. 일상 속에서 이들은 항상 거대한 세상의 벽에 부닥친다. 맑기만한 장애아들의 꿈을 맑게만 버려두지는 않는 것이다.

자신의 귀를 자를 정도로 그림에 정열을 쏟은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한다는 지혜양. "화가가 될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맑은 눈빛뒤에는 좀처럼 알수 없는 그늘이 배어있었다. 영화학교 선생님들은"교육제도 때문"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지혜양은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인 영화학교 초등부 2년을 다니다 일반학교인 동촌초등에 새로 입학했었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어하는 대부분 장애아 부모들의 간절한 희망에 지혜양 부모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그냥 친구만 있고 친한 친구는 없는'외로운 일반학교 생활. 출석 부를 때,질문할 때 자신을 부르는 줄 몰라 혼난 적도 많았다. 선생님의 설명하는입을 놓치면 다시 물을 수도 없었다. 눈물도 많이 쏟았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3배이상 열심히 공부했고 학급에서 20등 안쪽의 성적을 줄곧 유지했다.

그러나 결국 영화학교 고등부로 되돌아왔다. 생활지도를 맡고 있는 문공도 교사는"고등학교에서는 선생님 입모양 보는 것만으로는 진도를 따라잡기 힘들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마음의 고통이 더 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지혜양의 경우처럼 대부분 장애아들은 한번쯤 일반학교에서의 실패를 경험한다고 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이들에 대한 배려를 염두에 두지 않기때문이다. 학교에서 마저 한 풀 꺾이고 마는 장애아들의 꿈을 사회가 온전히 지켜줄리 없다."20일이 장애인의 날이지만 좋은 게 없다"는 혜정양. "TV는 왜 어린이날이나 장애인의 날 같은 특별한 날에만 수화방송을 하느냐"는 지혜양. 이들의 섭섭함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金在璥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