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어머니로 '성적표'도 없는 살림살이를 정말 열심히 살던 주부 조창림씨(49.대구시 북구 관음타운)는 어느날 장롱 깊숙이 넣어둔 수동 카메라가 생각났다."아들 둘이 대학에 들어가고 군에 입대하고 나니까 창밖을 볼 여유가 생기더군요.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니 새벽이면 차와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가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 돌아오는데 나는뭔가 싶더군요. 지금까지의 나를 지워버리고, 삶의 색깔을 바꿔보고 싶었어요"테니스 실력도 수준급이고, 꽃꽂이솜씨도 알아주는 조씨는 누구못지 않게 열심히 살아온 주부중의 한명이다. 주부들의 삶이 항상 탄력적이고 리드미컬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교과서적인 삶을 살아온 그가 생활에서 불편하거나 부당하다는 것을 느낀적은 없었다. 철강업을 하는 남편과든든한 두 아들, 안락하고 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그 편하고 안락함을 박차고,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현모양처로 살아왔던 지금의 모습과는 또다른 나를 찾고 싶었다. 그때 카메라가 생각났다.
85년인가 친지가 외국에서 사다준 카메라는 한번도 손길을 받지 못한채 장롱 깊숙이 처박혀 있었다. '똑딱 카메라'가 아니어서 작동법 조차 몰랐다.
마침 개설된 대구여성회관(351-0195)에서 열린 취미교실(사진반)에 등록한지 불과 5~6년만에 그는전국의 유수한 공모전을 휩쓸고 개인전도 두번이나 열었다.
늦게 난 바람이 무섭다더니 최근 3년간은 정말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인도여행에서는 무려 73통의 필름을 썼다. 며칠전에도 들꽃을 찍으러 의성 장천 등지로 다녀왔다. 산모퉁이에서, 못둑 한켠에서 무심히 피어나는 작은 들꽃의 아름다움과 눈부신 생명력을 카메라에 담았다."동화사와 감포로 떠난 첫 사진여행때는 셔터조차 누를 수 없었어요. 그때만 해도 주인공이 없는사진은 사진이 아닌줄 알았거든요. 에펠탑을 찍으면 그 앞에 내가 찍혀있어야하고, 자유의 여신상앞에도 누군가가 서있어야만 사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던 어느날 누드사진촬영대회에서 누드사진은 선이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부터 차츰 렌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어떤 사진이 좋은 것인지는 주부들이 옷 고르는 것과 같아요. 비싸도 안입는 옷이 있고, 해져도자꾸 입는 옷이 있듯이, 사진도 자꾸 찍다보면 맘에 드는게 나와요. 자기 스스로 아낄 수 있는 작품이 좋은 사진이에요"
그는 제39회 매일어린이사진전 금상(95년4월18일)을 비롯, 한국사협공모전에도 수차례 입상한 실력파(남원춘향미술대전 추천작가)로 삼성문화센터 사진여성클럽 회장을 맡고 있다.'백로이야기'를 주제로 한 제1회 사진전 이후 '백로같은 여자'로 별명이 붙어버린 그는 시간만 나면 들꽃과 백로를 찾아, 어쩌면 생활속에 함몰된 나 자신을 찾아 떠난다. 유럽 아시아 백두산 중국 인도 등지로 9번의 해외여행에서도 단체 여행 일정에 지장을 주지않고 맘에 드는 풍경을 잡기위해 새벽잠 한번 제대로 자지않았다.
무엇이든 완벽하게 처리하려는 그의 성격을 잘아는 남편의 외조덕에 그는 하셀 503CXI, 니콘 F4등 20㎏이 넘는 카메라백을 들고 오늘도 피사체를 좇는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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