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끝간데 없는 권력투쟁 '발칸 화약고'

1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권력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발칸의 화약고' 보스니아에 또다시 화약냄새가 풍기고있다. 유고슬라비아가 산산조각나면서 제각각 살림을 차린 나라중에 가장 골치덩어리인보스니아(공식명칭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현재 나토 평화유지군이 주둔해 있는데도 쿠데타설까지 나돌고있는 보스니아는 그야말로 서방세계의 애물단지다.

현재 보스니아를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세 사람. 전 세르비아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세비치(56),보스니아 세르비아 대통령 빌랴나 플라브시치(67), 보스니아 세르비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52)가 주인공이다.

강력한 단일국가를 구성하기 위해 사소한 민족적 이해분쟁에 철퇴를 가한 조시프 티토가 타계한80년이후 유고는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했다. 전국에 흩어져있던 세르비아계가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찾기위한 민족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기 시작한것. 이 민족운동을 주도한 밀로세비치는 89년 자연스럽게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이는 즉각 타민족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91년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각각 독립을 선포했으며 이듬해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도 독립을 선언했다. 여기에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도 독립함으로써 유고는 결국6개국으로 1차 분해된 셈이다.

그러나 보스니아는 출발부터가 매끄럽지 못했다. 인구의 40%%가 회교계, 30%%가 세르비아계,18%%가 크로아티아계로 그야말로 인종 전시장이었다. 회교계가 수적으로는 단연 우세했지만 세르비아계는 화력면에서 우수했다. 이웃 세르비아계로부터 군사지원을 받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는 테러와 반란을 계속, 1년만에 보스니아 영토의 3분의 2를 장악해버렸다. 세르비아계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92년부터 그 악명높은 '인종청소'작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세르비아계가 회교계를 완전 축출하겠다고 선언하고 대량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만행이 극도에 달하자 94년 나토군이 투입됐고 95년에는 미국 오하이오 데이턴에서 소위 '데이턴 평화협정'이 맺어졌다. 보스니아에 2개의 공화국, 즉 세르비아계가 주도하는 공화국과 이슬람 크로아티아계가 주도하는 공화국을 인정하고 사라예보 중앙정부는 한정된 권한만 가지는 이상한 형태의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유엔은 학살의 주범인 카라지치를 전범으로 국제사법재판소에 기소하고 보스니아 사태를 그 선에서 해결하려고 했었다. 카라지치는 그러나 전범으로 몰려민주당당수로서의 공식지위는 잃었지만 여전히 세르비아계의 폭넓은 지지를 얻고있어 나토군은아직까지 그를 체포하지못하고 있다.

이 틈을 비집고 나타난 인물이 '철의 여성'으로 불리는 플라브시치. 플라브시치는 카라지치로부터권력을 물려받을 정도로 열렬한 그의 추종자였다. 그러던 그녀가 지난해 국민투표로 대통령으로공식인정받자 갑자기 노선을 바꾸었다. 카라지치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밀수꾼, 부정부패 정치인, 살인마등의 표현이 플라브시치 입에서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특히 서방세력을 등에 업고 플라브시치는 국회해산, 재선거등 강수를 놓으며 카라지치 제거작업 선두에 섰다.결국 세르비아가 주도하는 공화국은 플라브시치측과 카라지치측으로 또다시 양분돼 권력투쟁을계속하고있는 셈이다. 구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이후시대로 접어들면서 구심점을 잃은 유고슬라비아는 이제 완전 분해됐고 그중에 조그만 나라인 보스니아조차 심한 분열상을 보이고있다. 전 세르비아 대통령인 밀로세비치와 카라지치의 연계설이 꾸준히 나돌고있는 가운데 국민적인 지지를얻고있는 이들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있는 플라브시치의 세력싸움은 이제양세력간의 자존심대결로 확산, 더욱 미궁으로 빠져들고있다.

〈尹柱台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