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왕주의 철학에세이(24)

"공자와 왕자" 나는 아직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무슨 각별한 이유나 뾰족한 대항논리를 가져서 그런 것도 아니다. 학창시절부터 그토록 많은 시간을 삶과 죽음, 존재함과 선택함, 목적과 이념등등의 문제에바쳤던 내가 이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에 대해 이렇다할 논리를 갖지 못한 것이 생각하면 못내한심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구태여 이유를 들라면 한두가지 못댈 바도 아니다. 첫째는 뭐니뭐니해도 그것이 내 사랑의 방식을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말로는 사랑과 자비를 주장하지만 그것들은내가 원하는 저 깃털처럼 가벼운 그런 사랑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무겁고 추상적인 어떤 것처럼느껴졌다. 그러므로 종교문제는 내게 언제나 사랑이냐 신앙이냐의 선택문제로 다가왔다.

◈종교적 사랑자비에 막연한 두려움

대학 다닐 때에는 제법 교회를 열심히 다녀서 몇번인가 세례직전까지 가는 심각한 상황이 없지않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왠일인지 내머리 속에는 예수의 얼굴 위로 짝사랑하던 여학생의 얼굴이자꾸 오버랩되어 왔는데 나는 당시 그것을 '떠나라'는 계시로 받아들였고 그때마다 '이 탕자가달력을 잘못 보고 너무 일찍 돌아온 것같습니다…어쩌구' 기도하며 도망치듯 황망히 교회를 빠져나오곤 했다.

또 다른 이유는 당시에 내가 빠져들었던 공자의 영향 때문이었다. 공자는 모든 일상사에서 지나치다 싶을만큼 시시콜콜한 것까지 살펴 가르침으로 남겼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괴력난신에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계로가 귀신에 대해 묻자 '사람일도 다 모르는데 어찌 귀신일까지 알겠느냐'고 답하기도 한다. 다시 죽음에 대해서 묻는 고집스러운 제자에게 공자는 '살아가는 일도 다모르는데 어찌 죽어서의 일까지 알겠느냐'(未知生 焉知死)고 응수해준다.

공자의 관심사는 결국 삶에 대한 것,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삶을 즐기고 사랑하는 방법들에 대한 것이다. 친절하게도 공자는 내가 고민하던 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사랑'을 위한 방법론에 대해서까지 충고해주었다. '논어' 14장 헌문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랑한다면 마땅히수고로움을 감당할 수 있지 않겠는가. 충실하다면 마땅히 깨우쳐줄수 있지 않겠는가'(愛之能勿勞乎, 忠焉能勿誨乎)

◈공자.셍텍쥐페리는 내게 '작은 종교'

'논어'를 읽은 적 없는 '어린왕자'의 작가 셍 텍쥐페리는 놀랍게도 이런 통찰을 잇는다. 수많은장미꽃이 피어있는 꽃밭에서 어린왕자는 왜 자신에게는 거기에 없는 한송이 장미꽃이 더 소중한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너희들은 아름답지만 텅 비어있어. 누가 너희들을 위해서 죽을 수 없을테니까. 하지만 내 꽃 한송이는 내게 너희들 모두보다 더 중요해. 내가 그에게 물을 주었기 때문이지. 내가 병풍으로 보호해준 것은 그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벌레를 잡아준 것도 그 꽃이기 때문이고. 불평을 하거나 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또 때로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을 내가 귀 기울여들어준 것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그건 내꽃이기 때문이야.' 어린왕자에게 사랑은 곧 서로를길들이기임을 깨우쳐준 여우는 그의 이런 마음을 이렇게 요약해준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란다'

나는 이런 충고의 진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 삶이 소중한 것은 정녕 내가 그것을 위해 고민하고 진땀 흘리고 비틀거리던 시간들 때문이다. 결국 이런 말들을 들려주었던 공자와 셍텍쥐페리는젊은 날 내가 기대어 살았던 작은 종교였던 셈이다.

〈부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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