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묵을수록 단 늙은호박·설익어 좋은 고두박

"호박-여성들에 친한 천연식품·박-해열.담석증에 효과"

설핏 뿌린 가을비가 90년만에 최고를 기록했다는 10월의 이상 낮기온을 대번에 제자리로 되돌려버린 어느날, 와촌(경산) 가는 길의 한 농가 담벼락에서 마주친 늙은 호박과 고두박(고지박)은 계절의 넉넉함을 한껏 더해준다.

늦은 가을, 흙담 위에 얹혀져 있거나 뒤꼍 언덕에서 말라붙은 덩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던 박과호박은 높은 가지에 빨갛게 익은채 서리를 맞아 까치밥이 되던 감과 함께 가장 한국적인 가을 풍경을 연출한다.

누구나 다 그러하겠지만 누렇게 익은 커다란 호박과 단단하게 여문 고두박은 우리네 입맛과 떼려야 뗄수 없는 쓰임새와 함께 어릴적 시골집을 연상시키며 앞만 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원초적인 순수함을 되살려준다.

어릴적 시골 토담집 안방에 둥게둥게 재여져있던 늙은 호박을 보면 저걸 다 무엇에 쓸까하고 궁금해했지만 입안에 살살 녹아내리던 호박물떡도, 미꾸라지를 넣고 푹 고아 할머니 기침약으로 쓰던 것도 펑퍼짐한 늙은 호박이었다.

늙은 호박은 예로부터 여러 용도로 많이 사용되지만 묵을수록 단맛이 강해지고 보존성이 강해 오래오래 두고 먹을 수 있고, 특히 여자들과 친숙한 천연 식품이다.

요즘도 아이를 낳은 산모에게 산후 조리 목적으로 푹 고은 호박이나 가물치를 넣은 호박탕을 먹이며, 아침 저녁으로 부기가 있는 여성들도, 다이어트에 신경쓰는 여성들도, 속이 편치 못한 여성들도 늙은 호박을 애용한다.

한방에는 호박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호박은 그 맛이 달고 성질이 따뜻하기 때문에 소화기를 보호하는 작용을 하고 소변을 잘 나가게 하며 갈증을 없애주고 폐의 기를 윤택하게 한다. 실제로호박은 부종을 빼기 위해서 가장 많이 사용한다. 보통 아이를 출산하고 난 직후에는 그 무겁던뱃속의 아이가 밖으로 빠져나와 몸이 날아갈 것 같지만 하루쯤 지나면 산모는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면서 몸이 푸석푸석해지기 시작한다.

어떤 경우는 소변이 잘 안나오기도 하고 아랫배가 살살 아프기도 한다. 이렇게 아이를 낳으면서몸안의 기혈을 심하게 소모한 까닭에 기운을 차리지 못하면, 특히 자궁과 관련있는 신과 방광의기를 심하게 소모했기 때문에 부종이 생기거나 소변이 잘 안나오면, 또한 산모들은 임신과 출산으로 생긴 몸안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고래로부터 호박을 이용해왔다.

착한 흥부가 배부른 아내와 설겅설겅 톱으로 썰었더니 금은보화가 쏟아졌다던 박은 덩굴성 식물로 줄기마다 새하얀 꽃이 피며, 주먹만한 박은 여름철 하룻밤만 지새고 나면 아이들 머리만하게무럭무럭 잘 큰다.

옛날 할머니들은 하지전에 새끼박이 까치머리 이상으로 크면 세어지겠다(=늙힐 수 있겠다)고 맘셈을 했을 정도로 박과 가깝게 생활했지만 요즘은 시장에서나 볼 수 있다. 솜털이 보송보송하게펴있는 박은 손톱으로 꼭 눌러보아 겨우 들어갈 정도이면 나물로 쓸 수 있을만큼 익은 것이며,오래 늙힐수록 껍질이 맨들맨들해지면서 여물어져 톱으로 썰어야할 만큼 단단해진다.추석절 제상에 나물로 그해의 첫선을 보이기 시작하는 박은 단맛, 쓴맛의 두 종류가 있는데 민간에선 쓴 박은 정신을 맑게하는데 좋다고 알려져 있으며, 단 박은 소갈증 해열 담석증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본에 자주 드나들면서 일본사람들이 초밥에 박고지를 넣어 먹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우리전통 식품 개발에 몰두한 한경수씨(경남 양산박 연구소 대표)는 박축제를 기획하고 있을뿐 아니라 박이 당뇨에 좋다는 점에 착안하여 박국수를 개발, 석탑산업훈장을 받고 수출특화 품목으로지정받기까지 했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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