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소설가 리튼이 19세기 초반 출간한 역사소설 '폼페이의 최후의 날'로 더욱 유명한 이탈리아 나폴리만의 폼페이는 로마 최대의 귀족휴양도시였다.
이 도시도 그리스시대엔 베수비오산기슭에 자리잡은 보잘것 없는 강촌(江村)에 불과했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차지한 후 특유의 해양기후와 온천, 주변의 경관등을 한껏 살려 삽시간에 로마 최대의 전천후 휴양도시로 건설했다.
전성기엔 귀족 3만명이 남녀시종 3만명을 거느리면서 향락의 극치를 이뤘다. 그 흔적들이 아직 색채가 선명한 갖가지 벽화로 발견되고 있다.
그걸로 미뤄봐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화려한 목욕문화와 지배자로서의 로마인들이생각해낼수 있는 욕망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준 쾌락의 도시였음을 짐작할수 있다. 그러나 이 지상낙원도 1세기경 화산대폭발의 재앙으로 일시에 흘러내린용암과 화산재가 도시전체를 덮쳐 도시자체가 소멸되고 말았다. 향락에 취해 어느누구도 대재앙이 올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그후 약1천5백년동안 폼페이는 지구상에서 잊혀진 도시였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쾌락에만 빠져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재앙의 징후는 15~16년전부터 있어왔다. 화산대폭발이 있기 약15년전쯤 큰 지진이 발생, 도시가 크게 망가졌으나 곧 복구로 이어져 더욱 화려한 도시로 바꿔놓았다. 활화산의 지진은 대폭발의 전조임을 경고한 유약한 학자들의 귀띔이 정복자의오만에 차있던 로마지배층에게는 먹혀들 리가 없었다. 불멸의 세계대제국을 건설한로마의 지배층은 하늘의 경고는 커녕 해가 뜨면 저녁에 반드시 진다는 평범한 진리조차 외면했기에 끝내 로마의 멸망까지 초래했다.
새삼 이 얘기를 들먹인것은 지금 한국호(韓國號)가 침몰하고 있는 과정이 폼페이의흥망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72년 오일쇼크때 우리는 오늘의 침몰을 대비했어야 했다. YS집권이후에라도 줄곧 나돌았던 내외(內外)경제 단체의 충고나마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오만과 무능이 30년간 차곡차곡 쌓았던 4천만의 피땀을 허망하게 무너뜨릴 수 있음을 우리는 지금 뼈아픈 고통으로 절감하고 있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줄도 모르고유럽 중산층 흉내를 낸 우리자신들의 경솔함을 보고 정작 그들은 뭐라고 빈정댔을까. 이제서야 얼굴이 화끈거린다.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그러나 그것도 부질없는 짓이다. 혹독한 현실이 우리앞에 다가오고 있다.
지금와서 누구를 탓해 어쩌겠으며, 또 그만큼 한가하지도 않고 겨를도 없다. 원자재도 못 들여오고 원유수입길조차 막힌다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야 할때이다. 패배그 자체보다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의욕상실이 더 무섭다. 전쟁의 폐허에 서 있다고생각하고 다시 시작하자. 50~60년대 보릿고개가 있을때라고 생각하자. 승용차에 대한 미련도 버리자. 가슴이 아리지만 자식 가르치는 것도 회초리로 새로 시작하자.지금처럼 마냥 품속에만 품고있으면 그들이 성장할 무렵, 국경없는 세계무대의 그치열해질 경쟁에서 이겨내질 못한다. 오늘 우리가 겪는 이 고통을 대물려 자식들에게 안길뿐이다.
침몰하는 배의 무게도 가급적 가볍게 해야한다. 그래야만 1척이라도 침몰전에 육지에 도착할 수 있다. 그들이 수리한 배로 되돌아올 때까진 구명복으로나마 버틸수밖에 없다. 다시 뭉쳐야 한다. 가진 자와 지도자는 뭉치게하고 인내하게 하는 구심점역할을 반드시 해 내야 한다. 사고의 대전환만이 우리가 이 국난을 이겨내는 지름길이다.
지금 폼페이는 세계적 관광유적지가 됐고 베수비오산에는 활화산관광열차가 다니며기름진 산기슭엔 과일류와 가축이 무성한 부농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박창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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