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도 추천에 의해 고위관직에 등용될 수 있는 현량과(賢良科)란 제도 를 처음 시행한 중종(中宗)은 전교를 통해 훌륭한 인재를 구하는 일이야말로 「나라를 위해 가장 중요한 급선무」임을 이렇게 강조했다. 「어질고 훌륭한 인재를 초청하기 위해 옛날 주공(周公)은 밥을 먹다가도 먹던것을 그만두고 어진자를 잃지않나 걱정했다. 세상에 어찌 사람이 없겠는가」 그러나 당시 영의정 정광필은 추천에 의한 관직등용제도에 대해 「우리 나라 관계(官界)의 인심은 중국의 순수하고 담백한 심성과 달라 중국에서는 가능하나 우리 조정에는 반드시 폐단만 생길 것이다」고 반대했다. 과연 바로 다음해 추천돼온 28명을 관 직에 등용시켰으나 같은 해 기묘사화가 일어났을때 선발 추천된자들이 대부분 자기 파벌 사 람들로 뽑혔음이 드러났고 추천제도가 당파에 악용되는 폐단은 을사사화까지 이어졌다. 어제 마무리 된 국민정부의 각료 임용과 차관 등용을 보면서 과연 새대통령과 측근추천자들 도 밥먹던것을 멈춰가며 고뇌할만큼 어진 인물을 잃지 않을까를 고심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된다. 우선 이번 초대내각 장·차관 임용은 인사(人事)가 망사(亡事)였던 문민정부와 달 리 국민정부의 차별성을 평가받을 수 있는 첫 기회이기도 했던만큼 국민들의 인사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각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관심과 기대는 무려 9명의 장관과 11명의 차관들이 재산문제와 병역면제 논 란으로 언론에 오르내리자 일부에서 5백여년전 현량과의 폐단을 떠올리는 「우려」로 바뀌 고 있다. 물론 중종의 전교처럼 「세상에 어찌 사람이 없겠는가」라고 말은 쉽게 하지만 막상 등용을 하려들면 털어도 먼지하나 안날만큼 이조건 저조건 고루 갖춘 인물을 찾기도 어려운게 사실이고 막상 최선을 다해 뽑아놓고 보니 이런저런 구설이 나오고 미처 챙겨보지 못했던 사유들이 불거지는 것이야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쩌겠느냐는 이해도 된다. 단지 현 량과 폐단을 떠올려 우려하는 이유는 인사 자체의 잘잘못이 아니라 인사에 따른 구설이 여 론으로 논란되고 있는 가운데도 외고집으로 가는듯한 임용, 추천자쪽의 태도와 인사에 대한 인식 자세 때문이다.
인사에 있어서 기본된 정의는 원칙에서의 형평과 상식 범위안에서의 공정성이다. 17개 요직 중 호남출신이 11명이라는 얘기같은건 시비거리가 될 수 없다. 출신을 따지는 것 자체가 불 공정하다. 다만 장·차관 임용과 같은 시점, 2천여명의 공무원들에 대해 10~30년전의 임용결 격사유를 다시 캐내 소급임용취소를 하겠다는 조치와 선거 사범등 정치권 범법자까지 사면 복권하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는 것은 새정부의 인사정책이 형평과 공정성에서 매우 우려되 는 수준의 기울기를 갖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한다.
장관직은 부동산 투기 의혹의 기본 상식인 위장전입을 하거나 재산문제로 징계를 받은 일이 있어도 관계없다고 변호하고 반평생을 교육계를 위해 헌신한 노교사에게는 30년전의 과실을 캐내 퇴직금과 연금조차 안주고 내쫓을만큼 임용의 결격사유라는게 중요한 것이라 우기는건 옳지 못하다. 신검에서 갑종판정을 받고도 외국에서 유학을 11년간이나 끌다가 그 사이 보 충역으로 편입된 장관에게 실정법상으로는 결격사유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새정부의 장 관이라면 도덕적 흠집과 도의적 결격만 있어도 결격사유에 해당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못난 과거 정권들에서 조차 그런 원칙과 인식은 지켜졌다. 여론의 도마에 오른 장관의 입장 은 견강부회로 옹호하고 말단 공직자들은 묵은 죄과를 소급해 캐내가며 잘라낸다면 YS의 망사(亡事)로 일관했던 인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어진 인재의 등용 못잖게 억울한 인재를 잃는 일에도 고뇌가 담겨야 하고 등용시비는 분명하게 가리되 검증된 후에는 가급적 오래 일하도록 해주는 것이야 말로 좋은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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