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경원차관은 퇴임하면서 "IMF가 천사인지 악마인지, 산타클로스인지 마귀인지 두고 볼 일"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국가경영에서부터 기업·금융·대학·각종 기관단체등 나라전체의 구조개혁은 외세나 외압이 아니고서는 해결의 길이 없었다는 내용인 것같다.IMF사태가 잘하면 구세주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IMF가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있다. 정치권만 하더라도 야당이 김종필씨 총리인준문제에 '이유'있는 투쟁을 하고 있다는 국민 상당수 시각에도 불구하고 나라경제 걱정은 않고 있다는 여권(與圈)의 지적이 먹혀들어가고 있는 지금이다. "지금이 어느땐데…"라는 말이 여론이 되고 힘이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IMF핑계를 대고 고의부도를 낸 기업주들이 구속되는 사태도 IMF가 세상만사를 다 덮어버리는시대임을 실감케 한다. 고용조정(정리해고)은 기업주의 해고회피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법조문은형식에 지나지 않는 현실을 겪고 있다. 사재(私財)를 회사에 내놓는 기업주의 솔선수범은 뉴스를한때 장식할 정도로 소수에 불과하다. 어느 세무사는 일거리가 줄어들어 여직원 절반은 내보내야할 처지이지만, 그중엔 가계를 책임 지고 있는 가장(家長)도 있어 아직도 말 한마디 못하고 있다고 했다. 어느 작은 회사의 사장은 "사람 줄이고 월급 깎아서 될 일이 아닌 것같다"며 매달 몇백만원씩 손실을 입고 있지만 가는데까지 가보겠다고 했다.
대구시교육청이 초중고생들의 '소풍'을 2년간 유예키로 했다는 보도를 보고 이것이야말로 IMF가다 덮어버리는 전형적인 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앞에는 외제 신발·가방·학용품을 추방하자는캠페인도 벌인 바 있는데, 취지는 좋지만 학생들이 멀쩡한 외제 신발을 놔두고 국산운동화를 새로 사 신는 촌극도 일어났다. 통상마찰도 생각해야 하는데, 하는 일들의 발상자체가 IMF 한가지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데 열중하는, 사려가 깊지못한 점이 큰 문제인 것이다.김영삼정부때도 대통령이 청남대휴가를 가면 '저러고 있을 때인가'고 비난하는 국민들이 있었다.김대중대통령은 취임도 하기전 69일동안 IMF에 매달려 휴식인들 제대로 취했겠나 싶다. 고령의김대통령이 과로하지 않기를 바라는 국민이 많아야 한다. 청와대관계자들도 대통령의 일하는 모습만 언론에 비치도록 노력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보여주기바란다. 인체라고 하는 것이 쇳덩이도 아닌데 모든 회의에 다 참석하는 '전투장면'만 보일 것이아니다. 국민들도 대통령의 휴식과 여가를 관대히 받아들여야 한다. 왜 선인(先人)들은 '한시간의독서와 두시간의 사색'을 권고했는가. 조용히 생각할 시간조차 없이 내몰아서 주요사안들이 적절히 검토·결정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IMF가 혼수장만에 있어 체면보다는 실속을 택하게 하는등 젊은이들의 결혼풍속도를 변화시키고,경차(輕車)가 인기를 얻고 있다든가, 귀농인구의 증가등 IMF 아니었으면 기대하기 어려웠던 변화들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좋은 점'도 있다. 그러나 살인강도·수표위조·청부폭력등 각종 사회범죄가 늘어나고 있고 기업파산이 꼬리를 이어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은 구조조정의 부산물·부작용으로 전적으로 돌려버리기에는 뭔가 석연찮다는게 일반국민들의 인식이다.
무엇보다도 IMF로 사람가치가 형편없어진 것이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식자층들은 비록 그 자신이 정리해고의 대상이 돼 직장을 떠났어도 경제가 일어서기 위한 필수적 진통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사람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점엔 개탄을 금치못한다. 구조조정도 인간을 위해서이다. 인간존중의 사회분위기가 무너져선 안될 것이다. 언제는 기업이 필요해서 뽑은 인재들을 오늘은 필요없으니 나가 달라고 해야하는 불가피한 상황하에서도 인간존엄성에 대한 최소한의예의는 있어야 한다. 골고다의 십자가를 같이 지고 가면서 통곡도 함께해야 한다.임덕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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