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발굴...여성운동 대구.경북 1백년 10

91년전 개교한 신명여학교(현 신명여고, 성명여중의 전신)에 요즘처럼 특별한 입학자격은 없었다.소학교를 다니지않은 여학생들은 예비과를 거쳐 본과에 들어갈 수 있어서 '소학교 졸업'이 입학의 전제조건은 아니었다. 같은 집, 같은 추녀, 같은 교실에서 배웠지만 4년에 마치는 사람, 5년에마치는 사람, 6년에 마치는 사람 등 여러 종류여서 수업연한이 제각각이었다.

첫 졸업식은 1912년 5월31일, 제일예배당에서 거행됐다. 1907년, 개교와 함께 들어온 12명의 입학생 중 이금례 박연희 임성례 등 세명〈사진1〉만 졸업했다. 모필로 쓴 임성례(1923년에 창설된대구YWCA초대회장)의 제1회 졸업장〈사진2〉에 적힌 '신명여중학교'란 교명에는 초대교장 부마태(傅馬太)가 보여준 대한정부에 대한 충성심이 스며있다.

한일합방을 단행한 총독부는 조선교육령에 위반된다며 중학교란 명의를 금했다. 그러나 단신으로여성교육의 일념을 이뤘던 부(傅)교장은 학교를 허가했던 대한제국에 대한 애정을 변치않고 허가당시의 이름 '신명여중학교'를 과감하게 고집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1회 졸업식과 동시에 교장직이 방해례(H·E·Pollard, 方解禮) 로 넘어간다음 '신명여자학교'로 바뀌었고, 보육과 신설에 따라 1927년 4월부터 '대구신명여학교', 다시 1944년 4월에는 '남산고등여학교'로 개칭돼 '신명'이란 교명을 완전히 빼앗기는 수난을 겪었다.개인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했던 일제는 "'신명'이란 교명에서 기독교 냄새를 풍긴다"며 신명이 자리한 동산이 옛날부터 '남산고역기'(南山故驛基)라 불리워지던 곳이니 '남산'으로 바꿀 것을 강요했던 탓이다.

해방후 교명은 남산에서 신명으로 환원되었으나 6·25 직후 학제 변경에 의하여 고등학교가 설립되고 신명여중이사회와 남산유지재단이사회와의 의견대립으로 신명교육재단이 설립돼 신명유지재단이 신명여고 성명여중을, 남산유지재단이 남산여고 신명여중을 운영하게돼 하나의 학교가 4개로 불어난 셈이다.

제2대 교장으로 부임한 폴라드의 교육정신은 '정의'. 형식을 떠난 벌거벗은 인간성에 물어보아 부끄러움이 없는 정의를 강조했던 그는 본국 부인들에게 호소하여 거둔 2천달러로 본관 신축공사를시작, 결국 4천달러를 들여 1913년 4월에 본관(사진3, 이 건물은 1968년 2월에 헐려 현재의 성명여중 건물이 새로 들어섬)을 완공했다. 27년간 봉직한 폴라드는 일제 치하에서 미션계 학교들의폐교가 진행되고 있을때 계성학교 현거선(H·H·Henderson, 玄居善)교장과 확고한 교육신념에따라 절대 폐교할 수 없다는 성명서를 공표, 신명학교의 영속성을 다진 주인공이기도 하다.미션계 여학교의 성격에 맞춘 전도회(1913년), 전도회와는 달리 신시대에 적합한 신여성의 면모를구현하기 위한 현실론적인 입장에서 태어난 양지회(1915년), 대구YWCA의 초석을 다진 인물을배출한 신명YWCA(1923년), 신앙중심의 서클 성심회(1937년) 등을 통해 국내외로 이름을 떨친 여성지도자들이 대거 배출됐다.

대구YWCA는 초대회장 임성례(신명 제1회 졸업생·사진4), 2대 회장 추애경(제7회), 5대 회장 이영현(제9회, 신명 3·1운동 주역, 제12대 신명재단이사장), 22~23대 최종덕(제38회), 25대 신동학(제35회)에 이르기까지 신명동문들과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으며, 한국최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朴敬元), 자유재활원 설립자 최귀희 등을 배출하면서 명실공히 근대여성 중등교육의 요람으로자리잡았다.

1926년 대구여자고보(현 경북여교 전신)가 설립돼 좋은 경쟁자를 맞이한 신명은 매서운 자아비판으로 제1차 혁신운동을 감행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1937년 헬렌 켈러 여사가 신명학교를 방문, "꿈을 가져라"는 메시지를주어 여학생들에게 자유를 위한 의지와 성취를 위한 꿈, 그리고 사회를 위한 봉사정신을 당부했다. 유아교육학자 신연식씨(29회졸·전 계명대교수)는 "헬렌 켈러가 신명학교에 오자 미국정부에서도 함부로 대하지마라는 극진한 부탁을 학교로 보냈다"고 당시(1937년)를 회상했고, 하오명씨(본초제약대표)는 이 학교에 다닌 누나를 통해 장미꽃을 선물받은 헬렌 켈러가 "향기가 매우 아름답다"고 답한 것으로 전했으며, 신명여학생들은 신체의 장애가 아니라 마음의 장애가 진짜 장애임을 깨닫는 좋은 기회였다고 돌이킨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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