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천 산골마을 소래실·돌마당

소백산맥 자락에 포근히 기댄 풍요의 고장 김천.

소백산맥의 줄기가 추풍령, 삼도봉, 대덕산이 높은 산을 이뤄 충북·전북을 가르고 서남쪽으로 빠져나간다. 남으로는 대덕산에서 갈려나온 가야산맥이 누워 수도산, 단지봉이 험준한 산세를 이어가 경남과의 경계를 짓고, 동남쪽에서는 금오산, 형제봉 등이 우뚝 솟아 김천과 성주군을 갈라놓고 있다.

소백산맥을 비껴 김천의 서북쪽과 서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봉산면 광천1리와 증산면 황점리에는 사라져가는 산골 동네를 부여잡고 고향을 지키는 노인들이 있다. 어렵사리 농사를 짓지만, 이웃간에 먹을거리·입을거리를 서로 챙겨주며 오순도순 삶을 이어가고 있다.김천 서북쪽 끝자락 추풍령 아래 첫 동네, 봉산면 광천1리. 돌목, 대막골, 감나무골, 소래실등 네 동네로 이뤄져 있다. 추풍령휴게소를 지나 충북땅을 거쳐 왼편으로 꾸불꾸불 외길을따라 산속에 위치한 소래실(松羅). 이 곳에는 대부분 노인 홀로 집을 지키는 6가구뿐이다.예전엔 10여가구, 50여명이 밤이면 동네 뒷동산에 모기불을 피워놓고 옹기종기 모여 정담을나누던 곳. 지금은 70~90대 노인 5명과 며칠전 이웃동네에서 이곳 빈집으로 이사온 50대 한가족이 동네 식구 전부다.

남녹분 할머니(90)는 30여년을 홀로 장작을 때고, 농사를 짓는 동네 '터줏마님'이다. 지금도2백평의 논과 6백평 콩밭, 포도밭 3백평을 직접 일궈가고 있다. "힘들게 뭐있어. 쉬엄쉬엄일하면 건강에도 좋은걸". 비록 가는귀가 어둡지만, 4㎞거리의 충북 추풍령면을 하루 2~3차례 다녀올 정도로 정정하다. 유일한 벗, '흰둥이'(강아지)는 하루종일 할머니를 따라다니며길잡이 노릇을 한다. 동네 주민들은 저녁때면 매일 남할머니 집마루에 둘러앉아 서로 안부도 걱정하고, 멀리 객지생활을 하는 자녀들 얘기로 꽃을 피운다.

소래실 사람들은 해마다 9월9일이면 성도 이름도 모르는 이 동네 할아버지·할머니 두분의제사를 지낸다. 20년 동안 동네 통장일을 맡고 있는 박태현 할아버지(81)는 "1백여년전 동네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땅 수백평을 동네에 기증하고, 제사를 부탁했다고 전해온다"고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난 오대순 할머니(76)는 "어릴적부터 한해도 빠지지 않고 동네 할아버지·할머니 제사를 정성껏 모시고 있다"며 "이날은 술과 음식을 나눠먹고 노래도 부르는동네 잔칫날"이라고 말했다. 소래실 노인들은 노구를 이끌고도 모두 포도농사와 벼농사를손수 짓는다. 남녹분 할머니댁에 모인 소래실 5명의 노인들은 "10~20년 후 우리가 저세상에가면 동네 할아버지·할머니 제사는 누가 모실지, 농사는 어떻게 할지 걱정"이라고 한숨을내쉬었다.

김천 서남쪽끝 하늘아래 첫 산골동네, 증산면 황점리(돌마당). 면소재지에서 서너 동네를 지나고 비포장길과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 1시간 가량 산속으로 들어가면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에 위치해 있다. 4가구 6명이 살고 있는 해발 8백여m의 황점리는 김천에서 가장 오지동네이다. 소 한마리와 염소 대여섯마리가 산비탈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계곡물 소리만들리는 스산하리만치 한적한 곳이다. 산비탈에는 과거 동네 젊은이들이 일궈놓은 수천평의논밭이 있지만, 지금은 정재만 할아버지(71) 부부가 짓고 있는 4백여평의 논밭과 이국형 할아버지(61)의 조그만 밭이 이 동네 농사터의 전부다. 예전엔 벼, 담배, 콩을 비롯 고랭지 채소가 산일대를 뒤덮었지만, 지금은 벼농사 일부와 콩밭뿐 대부분 노는땅이다. 여기저기 빈집터가 눈에 들어온다.

동네사람이라곤 정재만 할아버지 부부, 옆집 이씨 할아버지(78), 5년전 부인과 사별한 이국형 할아버지, 그리고 몇년전 빈집에 이사와 경북 구미에서 일주일에 한 두번 왕래하는 50대부부가 전부다. 이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명절이나 조상제사를 모시기 위해 장을 보러가는일. 버스를 타기위해 1시간이나 걸리는 돌마당 아랫동네 청천까지 산길을 걸어서 내려간다.그러나 서울, 대전, 부산 등 힘든 객지생활에도 불구하고 한달에 한두번씩 고향을 찾는 자식들에게 채소와 산나물 꾸러미를 안겨주는 것은 더없는 즐거움이다.

돌마당 사람들은 비록 수확하는 벼와 채소는 얼마되지 않지만, 4가구가 서로 나눠먹고 집안일까지 챙겨주며 정답게 살고 있다. 몸이 불편한 이씨 할아버지는 농사일을 제대로 못해 정부지원금으로 생활한다. 정노인 부부는 이런 이씨 할아버지에게 아침, 저녁으로 반찬거리를대주며 항상 안부를 돌본다. 이국형 할아버지는 이씨 할아버지가 고통을 호소하면 언제든지산골 동네까지 택시를 불러 할아버지를 부축해 시내 병원으로 모셔간다.

비록 무엇하나 좋을 것 없는 산골동네지만 야박한 세상살이에도 서로 마음을 부둥켜 안고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시대의 삶이 어떠해야하는가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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