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아시아적 가치 있다

우리의 대통령이 국제인권연맹이 수여하는 올해의 인권상을 수상하였다. 반갑고 기쁜 일이다. 대통령 스스로가 겸손하게 말하고 있듯이 이 인권상이 정말 대통령과 함께 독재에 대항하여 쟁취해낸 우리 국민의 영예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모두 거리로 달려나가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여도 좋으리라. 그런데 사정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지자체선거의 투표율이 보여주듯이 민주주의의 축제는 커녕 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만이 우리의 정신적 공황을 더욱부추길 뿐이다. 우리는 50년만에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든가 새정부는 개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명실상부한 국민의 정부라는 말이 그저 공허한 목소리로 귓가에 맴도는 것은허리띠를 졸라맬 정도로 경제가 어려워 제자리에 서있는 것조차도 힘들어서일까?여기서 우리는 정치적 허무주의의 뿌리가 다른 데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아시아적 가치'와 연관된 우리의 문화적 자존심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몇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민주화를 이룩한 데는 국경을 넘어선 세계적 인권정치의 덕택이라고 고백하면서, 경제건설을 위해서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희생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아시아적 가치는 없다고 잘라 말하였다. 대통령은 물론 아시아에도 인권사상의 철학적 기반이 있다고강변하지만, 이 말은 어째 힘이 없어 보인다. 저들이 "사람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침해될 수없는 권리를 가진다"고 말하면, 우리는 "동양인도 사람이다"라고 되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권과 민주주의만을 절대적 가치로 인정한다면, 아시아적 가치는 없을지도 모른다. 김대중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조화롭게 결합시키겠다고 거듭 천명하는 것을 보면, 아시아적 가치가 설 자리는 더욱 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시아적 가치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급속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 아시아의 문화적 자본들이다. 자원도기술도 자본도 없는 아시아의 높은 경제성장은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높은 교육열, 후세대에 대한 희생정신,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공동체 정신과 같은 문화적자본들의 덕택이다. 서구의 눈으로 보자면 개천에서 용나게 만든 힘들이라고나 할까. 박정희대통령은 이러한 아시아적 가치들을 수단으로 하여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였다. 그가 아시아적 가치를 경제적 자본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자원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아시아적 가치와 민주주의를 결합하는데 실패하였다고 해서, 아시아적 가치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시아적 가치는 있다. 서양인이 아무리 아시아의 몰락을 서구적 가치의 궁극적 승리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서양인이 될 수도 없고 또 원치도 않는다면 아시아적 가치는 있어야 한다. 우리의 정체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아시아적 가치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시아적 가치들이 민주주의와 융합할 수 있도록 그것들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일이다. 만약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는 높은 교육열, 공동체에 대한 책임정신, 후세대에 대한 희생정신이 그자체 가치있는 것이라면, 이러한 가치들은 더이상 단순한 수단이어서는 안된다.인간존중의 사상이 이 가치들의 토양에서 잘 자랄수 있다면, 민주주의는 이러한 가치들을구현할 수 있는 제도적 절차로 정착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를 자본주의로 착각하고 있는 서양인들에게 우리는 "민주주의는 본래 공생주의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우선 일시적 경제적 실패로 인한 정신적 불황으로부터 벗어나우리의 역사를 긍정하고, 아시아적 가치를 문화적 자본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자존심이손상되었기 때문에 대통령의 인권상 수상을 맘껏 기뻐할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나아가야할 堧 암시해준다. 그것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결합시킬 수 있도록 아시아적 가치의창조적 계승을 통해 문화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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