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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일기-아내몰래 영주로 직장옮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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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부터 새벽출근 직장옮긴 사실 뒤늦게 알아

어느날부터인지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나가는 남편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하루도 아니고 며칠째 계속 새벽에 출근하기에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냥 일이 많아나간다는 말 뿐이었다. 그저 그러려니 믿고있었는데 평소 남편이 알고지내는 사람을 통해 직장을영주로 옮겨 출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6년4개월간의 결혼생활 동안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며 아이 셋 낳아 지금껏 살아왔는데 단 하나뿐인 아내에게 그렇게 멀리까지 직장을 옮기며 의논 한마디 없었다니. 화가 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보잘것 없는 사람인가 싶어 분하기도 했다. 퇴근해서 돌아오면 두고보자고다짐을 했다. 그러나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 마음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을 보자 눈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너무나 힘든 모습, 배고프다며 쉬고 싶어하는 간절한 눈빛을 보자 차마 말을뗄 수가 없었다. 벗어놓은 점퍼에서는 싸늘한 기운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얼른 저녁상을 차려준뒤 편히 쉴 수 있도록 나는 따져 묻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나는 모두에게 닥치는 IMF의 어려움이 우리집에도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그 며칠간남편은 영주까지 왕복 4시간을 운전하며 직장을 다닌 것이다. 실직자라는 자신의 처지를 용납할수 없었던 남편은 새벽 찬바람 속에 영주까지 출퇴근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아내인 내게 아무 말 할 수 없었던 마음을 생각하니 오히려 미안해졌다.

힘든 출.퇴근을 견디다 못한 남편은 결국 영주에 방을 구해 옮겼다. 졸지에 주말부부가 돼 버렸지만 나는 남편을 원망할 수 없다. 이제 아이들은 매일같이 토요일만 기다리고 다섯살인 쌍둥이 두딸은 아침에 눈만 뜨면 무슨 요일이냐고 묻는다. 실직의 아픔 속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이들에게 내 불평은 그저 배부른 사람의 하찮은 걱정거리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실직의 고통은 없을지언정 떨어져 살아야 하는 아픔은 IMF라는 시련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아이 셋 잠재워놓고 혼자서 남편이 먹다 남긴 소주 한잔을 마셔보지만도무지 허전하고 처량한 마음은 가실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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