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김채한(생활부장)

요즘에는 도통 바람불어 좋은 날이 없다. 불었다 하면 큰 바람 뿐이다. 어느새 우리에게 '바람'이라는 의미는 험악하고 살벌하고 깡그리 싹쓸이해 버리는 경향으로 점차 인식되어지고 있다.IMF는 강풍을 동반했고 '북풍'에 이어 '세풍'이 강하게 몰아쳤다. 감원바람이 불고부터는 이웃이엷어졌고 마음은 얼어붙고 떨릴 뿐이다. 매사에 소극적이고 냉소적이 되고 말았다.

◆일상이 된 시대의 우울

'총풍'은 또 웬 바람인가. 시작 또한 그러했지만 끝 또한 보이질 않는다. 보일 턱이 없다. 여야를보고 북측이 한마디 쏘아 붙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런 것 때문이다. 안보를 볼모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지우지 않고 부나비처럼 불속으로만 뛰어드는 정치권의 화풍에 국민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고의적일 턱은 없지만 여기다 태풍 예니마저 가세했다. 마침내 바람 아니면 취급도 않는 나라 꼴이 됐다. 지금쯤 황금 들판이어야 할 그 들판에는 고개 떨군 채 벼들이 이삭을 틔우려 하는 바람에 농부들의 가슴만 헤집어진다.

◆앞만 보고 달린 결과

쓸데없고 실없는 바람들. 그 바람들을 적절하게 잠재울 수 있는 길을 우리는 찾지 못하고 있다.찾으려 들지 않고 있다. 자기 정체성을 점검해 보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가 300여년에 걸쳐 걸어온 길을 우리는 지난 30여년만에 해냈다. 그러나 여기에는 뒤돌아 봄이 없이 빨리 달려온 결과우리의 지적이고 윤리적이며 문화적인 자기성찰력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실종된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하나 막중한 책임을 지고있음을 알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산업을 일으키고 경제를 다져도 결코 모르는 사연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다수이고 보면다수가 살 길이란 오직 패당을 짓는 길밖에 없다. 패당과 패당이 맞부딪칠때면 당연히 바람을 일으킨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 손님을 침대에 누이고 침대길이에 맞춰 손님 다리를 자른다. 패당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서 강요하는 것보다 나을 바는 없다. 계속불고 있는 노동계의 구조조정 바람도 그것이 새로운 생산방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임금압박을 피하려는 의도에서 이해된다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우리 모두 누워 있는 꼴이다. 으시시한 바람만 불 뿐이다.

국민들은 몸서리쳐지는 이런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정부가 좋다. 사사건건 폴삭거리며 개입하는정부보다는 지긋한 정부가 좋다. 자본과 늘 동반자가 되어 노동자측에 압박을 가해온 정부보다자본과 노동의 갈등이 스스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때까지 참고 있다가 슬그머니 등을 두드리며 풀어주는 그런 정부가 좋다.

◆영원한 것은 없다

물결이나 거센 파도는 바다의 표면일 뿐 바다의 전부는 아니다. 바다밑에는 해류가 있고 그 흐름아래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심해의 거대한 물이 있다. 아무리 강풍을 머금은 태풍이 한 차례지나간다해도 바다는 곧 잠잠해 진다. 그래서 전쟁과 같은 큰 사건도 30~40년 길어야 70년 안팎영향을 미치는데 그친다. 이는 바다의 이미지를 이용해 자신의 사관을 설명하는 것으로 유명한역사가 페르낭 브로델의 말이다.

광주의 무등경기장에 프로야구가 열리는 날. 특히 해태가 삼성을 이기는 날. 무등경기장을 떠나갈듯 울리는 노래가 하나 있다. '목포는 항구다'. 그러나 어느 항구고 영원히 정박할 수 있는 항구는 없다. 마치 우리들이 자기정체성의 정확한 인식없이는 실없고 쓸데없는 바람에서 영원히 해방되는 날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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