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빅딜'은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 16일 5대 재벌그룹과 주채권은행간에 재무구조 개선약정이 체결되었다. 아직도 곳곳에 걸림돌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재벌개혁의 기본윤곽은 확정된 셈이다. 특히 오랫동안 정부와 재벌간에신경전을 벌여왔던 빅딜문제도 가닥을 잡게 되었다.

빅딜의 경우 그동안 정부의 적극적 자세에 반해 재벌이 방어적 입장을 취해온 까닭에 이번의 약정체결이 재벌의 양보로 비쳐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은 빅딜로 인해 5대재벌의 독점체제가 더욱 공고해졌으며 빅딜의 대가로 재벌들은 경영권 보장을 전제로 한 은행의 출자전환등다시한번 막대한 특혜를 받게 되었다. 정부의 공세에 못이기는 척 결과적 실리는 재벌들이 챙긴것이다.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간의 사업교환을 제외하고 나면 대부분이 부실계열사 정리를 통한 경영합리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기존의 핵심업종 가운데 포기하는 사업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계열사 축소방식 또한 대단히 소극적이다.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반도체 통합법인 설립정도가 예외일까 나머지는 주로 그룹내부적 합병에 의존함으로써 우량주력기업이 부실계열사를 떠안는 형국이다. 핵심주력업종 선정과정에서 희망하는 주력업종을 전부 허용해주다 보니 예를들어 금융-서비스 분야는 5대재벌 모두의 주력업종이 되고 말았다.

빅딜을 통한 주력업종의 경쟁력 강화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 되고 만 꼴이다.그러나 쥐 한마리라도 그게 어딘가. 어디 한술 밥에 배부를 수 있겠는가. 이제 시작일 뿐인 것을.정경유착이 차단되고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게 되면 강제하지 않더라도 결국은 스스로 주력업종에 전문화 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사실 빅딜은 분위기만 조성하고 구체적 행위는 기업들의 자체 판단에 맡겨도 좋을 일이었다.

재벌개혁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재벌이 시장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원리가 재벌을 지배하도록 틀을 짜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재벌의 현재 구조는 해체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원리가 무엇인가? 합리적 경영으로 이익을 남기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원리 아닌가. 우리의 재벌은 이제 더 이상 합리적 경영단위도, 이익을 남기는 기업집단도 아니다. 심하게 말하자면총수의 맹목적 권력욕을 충족시켜 주는 권위주의적 관료집단에 불과하다.

재벌총수의 권력은 이익창출에서 발생하기 보다는 사업영역과 규모의 확장 그 자체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강하다. 바로여기에 우리네 재벌의 비극이 있다. 이러한 재벌이야말로 비시장적 경계주체의 전형이다.

재벌을 시장경제의 합리적 일원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는 재벌총수의 전횡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창업주나 2세들의 무능해서가 아니다. 아무리 유능하더라도절대권력자인 총수의 행위 준거가 합리적 시장원리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체결된 약정에는 재벌을 시장원리에 순응시키기 위한 내용들이 너무 미약하다. 소액주주권 및 사이이사제의 확대, 사외감사제의 강력권고 등도 진일보임에는 틀림없겠으나 내친김에 한걸음 더 나가야 한다. 이미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대기업의 경우에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경영권은 소유자의 고유권한이라는 전근대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근로자의 경영참여도 신중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갈 길은 멀다. 빅딜은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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