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150억원의 한보 대선자금 의혹과 청문회 불출석 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9일 아침 상도동자택에서 밝히겠다던 긴급기자회견은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중요한 정치적 고비 때마다 산에 올라 결의를 다졌던 김전대통령은 이날도 청문회 증인출석을 거부한 채 서울근교의 청계산 등산에서 회견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김전대통령은 회견예고이후 속속 상도동으로 모여든 문민정부 당시 핵심 측근인사들의 하나같은 건의를 받아들여 기자회견 연기를 발표했다.
6시간만의 번복이었고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의'골목성명'이후 예상됐던 제2의 골목성명 사태는발생하지 않았다. 이날 상도동대책회의 멤버는 김용태(金瑢泰), 김광일(金光一)전비서실장과 이원종(李源宗), 조홍래(趙洪來)전정무, 김정남(金正男)전교육문화수석 등 12명의 측근인사였다.김전대통령이 밝히려 했던 회견내용과 관련, 정치권에서는 현정권에 대한 대대적 반격이라는 다수설과 적절한 선의 유감표명을 포함한 양보일 것이라는 소수설이 맞섰다. 여기에 여권핵심부와의 뒷거래설도 제기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태의 전말에 비춰볼 때 회견내용은 분노의 압축에다 현정권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도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실제로 김전대통령은 지난해 연말이후 상도동을 찾는 인사들에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 대한섭섭함과 울분을 감추지 않았다. 97년 대선에서 이회창(李會昌)후보를 돕지 않은 자신때문에 지금의 김대통령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즉 현정권이 자신에게 행하는 언행이 배은망덕이라는 인식이다.
그리고 서석재(徐錫宰)의원 등 일부 민주계인사들의 국민회의 입당에 대해서도 굉장한 불쾌감을나타내기도 했다. 또 기회있을 때마다 현정권을 향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등 정면대응의'칼'을 갈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이 청문회를 통해 자신의 92년 대선자금까지 들먹이고 청문회 출석압력을 가해 오자 산에 올라 전의를 가다듬은 뒤 독자적인 결정으로 불같은 성질을 그대로 드러내려 했을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회견 연기와 관련해서는"아직은 때가 아니고 득보다 실이 많다"는 측근인사들의 한결같은만류가 주효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출범한지 1년밖에 안된 현 정권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국민적 공분과 잠잠해지고 있던 비난여론에 다시 불씨를 던질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였다. 또 아직 현정권의 임기가 4년이나 더 남아있고 청문회도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좀 더두고보자"는 설득도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전대통령의 회견 연기가 현정권 핵심부의 설득과'뒷거래'의 결과라는 분석도 유포됐다. 전직대통령과 40년에 걸친 정치라이벌로서 서로를 훤히 아는 사이인 현직과전직대통령측이 벼랑 끝에서 치열한 신경전 끝에 타협했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설명도 덧붙여졌다.
하지만 긴급 기자회견이 해프닝으로 끝났다고 해서 모든 상황이 종료됐고 결과적으로 김전대통령만 실없는 사람이 돼버린 것으로 단순히 볼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김전대통령은 여론의 향배는 차치하고라도"여차하면 언제라도 현정권에 대한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정치적 과실(果實)은 거둔 것으로 보인다.이에 따라 앞으로 언제라도 동교동과 상도동 두 세력간의 치열한 신경전과 대결양상이 불거질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李東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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