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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일민'주의자 안호상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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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을 받드는 정신, 즉 민족혼을 구심점으로 단결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어요. 지금의 국난을 극복하고, 21세기 밝은 미래를 펼쳐나가려면 민족정신을 고양해야 합니다" 열혈 민족주의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21일 97세를 일기로 타계한 안호상(安浩相) 박사가 마지막 남긴 말로 알려진다.

학자·정치인·종교인으로 살다 간 그가 평생 신조로 삼아온 '한백성(一民)주의'에 뿌리를 둔 이 말은 '우리 민족이 하나로 뭉치는 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고령에도 불구하고 사회활동의 전면에 나서는 열정을 보였던 그의 생애는 다채롭기 이를 데 없다. 일제 때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교수 시절 한국말로 강의했다.

단군조선을 중심으로 한 상고사와 한글전용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국내 최초의 철학개론서를 내기도 했다. 정부 수립과 함께 초대 문교부장관이 돼 단군(檀君)사상의 '홍익인간' 이념을 우리 교육의 주요 목표로 설정했고 학도호국단을 창립했다.

90년말에는 '교과서 식민사관 씻기' 소송을 제기해 상고사 왜곡을 질타했다. 90세를 넘기고도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95년에는 대종교 총전교 신분으로 북한에 단군신앙을 전파해 통일의 밑거름이 되겠다며 밀입북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최근까지 배달문화연구원, 국사찾기협의회, 민족통일국민운동본부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당대의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던 그는 세번이나 결혼했지만 부인이 모두 먼저 타계했으며, 숱한 일화를 뿌렸다.

춘원 이광수(李光洙)의 소개로 만나 두번째 부인이 된 시인 모윤숙(毛允淑)과는 숱한 화제를 낳았으나 성격차로 이혼하기도 했다. 20세기를 거의 모두 지켜본 산증인이요, 화려하고 다양한 편력으로 세인들을 경탄하게 했던 그도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역사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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