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는 지금 '사이버전쟁'중

무역업체에 근무하는 이 과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자신의 컴퓨터를 켜고 전자우편을 검색했다.

해외 거래업체들이 보내온 질의와 회신들 속에 '독일 S사와의 계약내용'이라는 편지에 시선이 고정됐다.

이 과장은 깜짝 놀랐다S사 계약건은 회사 일부 고위간부와 자신만이 아는 일급기밀인데다 보안상 전자우편을 통해 내용을 주고 받는 것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내용을 확인한 그는 더욱 소스라치게 놀랐다. 첨부된 동영상파일에는 간밤에 S사 계약건과 관련해 회의실에서 사장과 주고받는 대화 장면이 말소리까지 또렷이 녹화돼 있었던 것.

편지에는 '오전 10시까지 10억원을 온라인 송금하지 않으면 경쟁사에 똑같은 우편을 보내겠다'고 적혀있었다.

외부인이 경비시스템을 뚫고 회의실에 몰래카메라를 장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론은 바로 해커의 짓이었다. 화상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실 메인컴퓨터 위쪽에 설치된 비디오 카메라가 해커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한 것. 문제는 당시 회의실 컴퓨터는 작동하지도 않았고 비디오 카메라 역시 꺼져 있었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물론 위의 사례는 가상시나리오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뿐(알려지지 않았을 뿐 인지도 모른다) 현재 상황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미육군 컴퓨터보안부대는 최근 '포인트 앤 클릭'이란 해킹프로그램을 이용해 외부 컴퓨터 보안시스템을 뚫고 들어간 뒤 네트워크로 연결된 비디오카메라와 마이크를 작동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컴퓨터 시스템을 다운시키거나 정보를 훔쳐가는데 그쳤던 해킹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훔쳐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세계는 지금 '사이버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연방수사국(FBI)은 주요기관 해킹사건에 대한 체계적 수사를 진행 중이며 미국방부는 24시간 전산망 감시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또 오는 2002년까지 해커단속 전담기구 설치를 위해 32억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일본은 해킹 처벌을 위해 '부정 액세스 행위금지 등에 관한 법률안'을 의회에 제출했으며 경찰청내 '사이버캅'을 결성했다. 우리나라 역시 21세기 미래전에 대비, 오는 12월까지 외부세력의 정보침투 방어를 전담할 해커대응팀을 구성키로 했다.

공산권을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도 앞다퉈 해커부대를 창설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지난 97년 컴퓨터바이러스 부대를 만들었으며 북한도 인민무력부 산하 요원들을 사이버 전쟁요원으로 훈련시키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와 인도를 비롯한 제3세계 고급두뇌들은 경제적 이득을 얻기위해 사이버 전쟁의 용병으로 나선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해커를 막기 위한 사이버 전쟁의 주역 역시 해커들이다. 이들 사이버 용병의 무기는 소프트웨어와 반도체칩. 널리 알려진 첨단무기로는 강력한 파괴력으로 무장한 컴퓨터 바이러스의 일종인 '논리폭탄', 특정명령어를 만나면 전산망을 파괴하는 '부비트랩형 칩', 특정신호를 받으면 강력한 전자기파를 발산해 주위의 전산시스템을 못쓰게 만드는 'EMP(ElectroMagnetic Pulse)가방' 등이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는 스팸메일 형식의 '전자폭탄(E-bomb)'도 등장했다는 소식이다.

미국 방위전문가들은 현존하는 국가안보의 최대 위협은 '사이버 테러'이며 생화학무기보다 더 심각한 위험요소라고 분석했다. 컴퓨터 네트워크의 발달로 해커 침투에 의한 전력공급 차단은 물론 전화, 항공, 금융거래까지 중단될 수 있다는 것.

미래의 전쟁을 알리는 서곡은 머리 위로 날아드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침투하는 해커들의 전자폭탄일는지 모른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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