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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김희곤(안동대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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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초라한 행색의 할머니 한 분이 대학내 내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의자에 앉자마자 하소연. 어떤 사람이 자신의 부친을 독립유공자로 만들어 주겠다며 집에 있던 약간의 자료를 가져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당액의 '여비'와 '활동비'까지 함께 챙겨 갔다. 그 사람은 몇달 뒤 다시 찾아 왔다. "부친이 곧 유공자로 포상될테고, 그러면 연금을 받게 될 것이니 2년치 연금을 성공 사례비로 달라"

하지만 할머니는 그만한 돈을 구하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그것이 이 할머니가 그 사람을 본 마지막이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자료 조차 잃어 버렸으니 어째야 하겠느냐"…할머니는 울먹이고 있었다.

독립유공자 포상 문제는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고 미래의 방향을 옳게 잡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그러나 1962년에 시작된 공적 심사 초기에 몇몇 친일분자 조차 포상되는 등 더러 잘못이 있었음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물론 그 뒤에는 많이 개선됐다. 70년대를 지나면서 규정이나 시행 내용이 많이 진보됐다. 90년대 들어서는 후손이 끊긴 '잊혀진 유공자'도 발굴해 포상함으로써 신청이 없더라도 서훈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특히 광복 50주년이었던 95년도에는 많은 수의 독립 유공자를 발굴해 냈고, 해방 이전에 작고한 사회주의 계열 운동가들도 포상 대상에 포함하기 시작했다. 민족사의 범주를 넓히려는 노력의 결과이다이런 좋은 흐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후손들이 포상 신청을 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후손일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앞에서 말한 피해 할머니도 마찬가지일 터. 그런데도 이들을 돕느니 하며 접근해 등을 치는 악한들이 그들을 노린다니, 정말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동냥은 못줄 망정 쪽박까지 깨서야 어찌 인간이라 할 것인가? 더욱이 민족의 정기가 관련된 일 아닌가?

그 할머니를 제대로 도와 드리지 못한 필자 스스로가 한심스러워 지금도 생각만 나면 가슴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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