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에 비해 책이름이 지나치게 과장돼 충격적이었기 때문일까. 최근 발간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가 발간 한달여 만에 베스트셀러 1위를 추격하고 있다고 한다. 베스트셀러라고 다 의미있고 좋은 책이 아니지만 부분을 전체로 매도하는 일방적 주장은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어리둥절한 '공자 죽이기'
저자는 이 책에서 한일합방, 6.25, IMF 등 우리민족 위기의 원인은 당초 거짓에서 출발한 공자의 유학(교)을 신봉한데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공자의 유학이 유입된 이래 600년간 한국인의 의식내면을 지배하면서 우리사회를 정치우선의 남성.어른.기득권층을 위한 생기없는 세상으로 만들었다며, 우리가 신봉하고 있는 이 유학의 틀을 깨지 않는다면 한민족의 위기는 계속되고 국경없는 세계화 정보화시대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저자의 과격한 주장과 진단은 눈앞에 다가온 21세기 지구촌 시대를 앞두고 우리전통의 불교와 유교문화 유산에서 민족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찾고자 하는 국학연구자와 그러리라 믿고있는 일반인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특히 유학과 선비의 고장임을 자부하며 살아온 일부 지역민들에겐 모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검증이 요청된다.
먼저 저자가 주장하는 유학이 현 우리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의 실상을 따져볼 일이다. 우리민족은 20세기초 근대화 시기 침략자 일제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으로 유학사상과 문화를 제대로 계승할 수 없었고, 해방후엔 서양문물을 일방적으로 수입함으로써 이젠 전통의 단절을 걱정할 정도로 제도와 관습이 서구화됐다. 이때문에 정치 교육 사회 경제 전반의 조직에선 해외유학파들이 자리를 독점, 학계는 수입학이 판을 치고 한국학을 연구하는 우리학자들이 일본학자들보다 적은 실정이다. 의식주도 상당부분 서양식에 길들여져 청소년들의 입맛은 햄버거와 피자에 더 익숙하다.
◈햄버거에 더 익숙한 청소년
이같은 상황에서 부정과 부패 정치인들의 패거리만들기 질서문란 여성억압 등 사회의 모든 부정적인 것의 책임을 전승단절위기의 유학에만 떠넘기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그런 논리라면 미국의 골칫거리인 이혼 동성연애 청소년 총기폭력 에이즈 등은 기독교에 원인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또 유학이 없는 곳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부정과 부패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둘째 지금까지 우리의 유학이 공자의 사상을 무비판적으로 추종, 신봉하기만 했던가. 아니었다. 우리선조들은 중국서 들여온 유학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기일원론(氣一元論)으로 심화발전시켜 화이(華夷) 귀천(貴賤) 반상(班常)의 구별을 혁파하는데까지 이르렀다. 더욱이 실학자 최한기는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일기운화(一氣運化)의 개념을 창안, 동아시아 철학사가 중세를 청산하고 근대로 나아가는 단초를 열었다.
셋째 저자의 공자죽이기는 서양의 아시아때리기와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강국 미국은 패권주의 서양문명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걸핏하면 동아시아는 유교의 권위주의와 지배문화를 포기하지 않는 한 후진을 면할수 없다며, 아시아적 가치를 폄하하고 자기식의 획일화를 강요한다. 하지만 하나만 살아남기 위해 질주하는 자본주의 자유시장체제와 같이 나누며 살아가는 동양적 공동체 삶의 가치판정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4대문명권 서로 존중을
21세기를 앞두고 지난 100년의 계급모순 민족모순 문명충돌 등 근대의 분란을 극복하기 위한 중세기 연구가 전세계적으로 활발하다고 한다. 기독문명권 이슬람문명권 힌두문명권 유교문명권 4대문명권이 서로 다른 쪽을 침범하지 않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한 내력을 재인식, 근대 다음의 시대를 열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한국 중국 일본 월남 유교한문문명권 가운데 중세의 문화유산이 어느 나라보다 탄탄하고 중세후기 새로운 기학(氣學)으로 근대유학의 단초를 연 바있는 우리의 선진 유교문화 유산을 새로운 세계문화 창조의 밑거름으로 재활용하기 위해서라도 공자(유학)는 살려야 한다. 그래야 다가올 세기 문명권과 문화대결시대에 '우리'가 있고, 아시아가 살아남는다.
댓글 많은 뉴스
법원장회의 "법치주의 실현 위해 사법독립 반드시 보장돼야"
李대통령 지지율 50%대로 하락…美 구금 여파?
李대통령 "한국서 가장 힘센 사람 됐다" 이 말에 환호나온 이유
'박정희 기념사업' 조례 폐지안 본회의 부결… 의회 앞에서 찬반 집회도
조희대 "사법개혁, 국민에게 가장 바람직한 방향 공론화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