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으로부터의 '7월 중 반환' 설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북관(北關)대첩비'의 비문이 한국 금석문 감상회 이봉호(李奉昊) 회장(대구)에 의해 본래 모습 대로 재현되고, 번역도 이뤄졌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 반환 업무에 관계하는 한 인사가 "반환 문제는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고 이회장에게 알려와, 국내 반입이 실제로 이달 중 성취될 수 있을지 더욱 주목되고 있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당시 평안도(서쪽)와 함경도(동쪽) 등 두 갈래로 침공했던 왜군 중 함경도 쪽으로 올라 갔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부대에 맞서 이 지역을 회복해 나갔던 의병들의 투쟁사를 기록한 비석. 러·일전쟁 때 이 지역에 주둔했던 일본부대 장군에 의해 강탈 당한 뒤 도쿄 야스쿠니(靖國)신사 구내 구석진 곳에 세워져 있었다.
이때문에 국내에서는 여러차례 반환 운동이 벌어졌으나 실패했으며, 97년도에는 대구·경북지역 인사들이 나서서 반환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본보 97년 3월1일 및 6월10일자 보도) '반환청구 사업회'를 만들어 학교법인 육주학원 박병립(朴炳立) 이사장 측이 경비 부담을 맡고, 금석문 감상회 이회장 등이 실무를 담당해 반환 업무를 추진한 것.
이에 맞춰 일본에서도 조선 황세손 이구(李玖)씨를 명예총재, 재일민단 신용상(辛容祥) 단장을 최고고문, 일본인 7명을 고문으로 한 '한국 이송 실행 위원회'가 구성됐다. 일본측 이 단체에서는 회장인 일본인 가끼누마 센신(枾沼洗心) 스님과 부회장인 김용우(金容雨) 민단 부단장 등이 실무를 맡았다.
이때 지역 인사들이 바란 것은 대첩비를 임란 때 순사한 박대복 선생 전적비가 있는 고령 박곡으로 옮겨 세우는 것. 그러다 작년 9월 일본측이 고령이 아닌 38선 어느 지점에 옮기겠다는 뜻을 밝혀 와, 추진을 중단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지역 인사들은 일본 현지를 방문해 확인 조사를 벌였으며, 이봉호 회장은 독립기념관에서 비문 탁본을 얻고 의병대장이었던 정문부 선생의 문집을 구해, 이를 바탕으로 비문을 해석하고 같은 크기와 같은 글자체로 비문을 재현했다는 것.
비문은 △왜병의 신속한 함경도 장악 △국경인·국세필 등 아전들이 왜군의 앞잡이로 나서서 횡포를 휘두르던 일 △뜻있는 개인들에 의해 소수의 의병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던 모습 △정문부를 대장으로 추대하면서 의병을 조직화해 나가던 과정 △왜군 앞잡이부터 처단한 일 △11월 벌어진 가파(加坡) 전투를 계기로 왜군을 위축시켜 분기점을 이룬 사실 △12월의 쌍포 전투 및 다음해(1593년) 1월의 단천전투 △혁혁한 전공에도 불구하고 대장 정문부 선생에겐 표창이 없었던 일 등을 차례대로 서술하고 있다.
금석문 감상회 이회장은 "재일민단 김 부단장이 1일 전화를 걸어 7월 중 반환이 불확실하니 대구지역 인사들이 반환운동을 계속하는 것이 좋겠다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서울지방 반환추진위의 계획이 무산될 경우, 대구권을 중심으로 한 활동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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