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영남기행-26)대구 도심공원

푸르름. 그 속에는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아주고 도시의 짜증을 주저앉혀 주는 푸근함이 있다. 푸르름이 도심전체를 감싸고 있다면. 도심에 키 큰 나무가 숲을 이루고, 그 숲속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그 숲속 벤치에 앉아 느긋이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면에서 대구는 희망이 있다. 도심 한복판에 경상감영공원, 국채보상기념공원이라는 귀중한 공간이 있다. 구 중앙초교 자리(3천800여평)에 예정돼 있는 2·28기념공원, 중구 태평로 3가 담배인삼공사 대구제조창 부지(1만1천평)에 계획중인 도심공원 등도 있다.

2, 3년전부터 하나둘씩 생겨난 서구청앞 분수, 경상여상앞 폭포, 두산오거리 폭포, 두류정수장앞 소공원…. 대구가 도심공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100번 가까이 조성공사 현장을 찾는다는 문희갑(文熹甲)시장의 극성(?)에다 대구시의 의지도 대단하다. 2000년대 초반쯤이면 푸르름이 대구 도심을 일정부분 감싸 안아 줄 것 같다. 그래도 충분하진 않겠지만….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경상감영공원. 97년 담장을 헐어내고 개장한 직후부터 하루 2천명의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오후에는 벤치(144개)를 차지하기 조차 쉽지않다. 분수가나 잔디밭 경계석에 걸터앉아 있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50원, 100원을 내고 찾아가던 중앙공원 시절과는 감히 비교할 수가 없다.

직장이 시내에 있어 가끔씩 공원을 찾는다는 손영준(32·학원강사)씨는 "도심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받게 된다"며 예찬론을 늘어놓았다. 선화당(宣化堂), 징청각(澄淸閣), 관찰사 선정비 등 각종 문화재와 함께 잘 정비된 산책로, 푸른 잔디밭, 시원한 분수 등은 쉬는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 보면 그저 아름다운 곳만은 아니다. 청소년 문제의 실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부 10대들은 공원내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질주하고 담배꽁초, 쓰레기 등을 마구 버리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대낮에 교복을 입고 남학생 무릎에 앉아있는 여고생, 육두문자를 뱉어내며 행인과 시비를 벌이는 고교생, 토요일이면 무리를 지어 밤새도록 고성방가를 하는 10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곳에서 공공근로를 하는 김모씨의 얘기. "중고생들이 공원을 다 버려놓아요. 담배꽁초 버리는 것을 말리다 욕을 듣고 위협을 받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공원에서 즐길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시민들이 거리낌없이 찾을 수 있는 치안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중구 동인동에 있는 국채보상기념공원. 대구시가 오는 12월 31일 금세기 마지막 송년행사를 위해 집중 투자하는 곳이다. 현재는 달구벌대종만 두드러져 보이는 2천400평 남짓한 자그마한 소공원. 올해말 2단계 공사가 끝날때 쯤이면 구 중구청 부지와 현재의 중앙도서관 등이 포함돼 1만3여평의 큼직한 공원이 된다.

대왕참나무가 천장을 이룬 아늑한 산책로, 촘촘하게 돌을 깔아놓은 보도 등은 조용하고 깨끗한 느낌을 준다. 지난달 30일 오후 7시. 데이트하는 남녀와 중고생들이 주이용층인 탓인지 이곳 저곳에서 활기가 감지된다. 종각 뒤편에는 여고생 5,6명이 춤연습을 하고 있었고 벤치 곳곳에는 청춘남녀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활기와 즐거움은 공원이라는 주변환경과 어울리면 더욱 커지는 것인가 보다. 밤에 조명등이 숲을 밝힐 때면 무드(?)가 더욱 고조된다. 그러나 다소 유치한 느낌이다. 경주 보문단지에서 본 어떤 호텔입구와 똑같아서 일까. 낮이 되면 콘크리트와 조형물, 나무 등에서 뿜어내는 제각각의 개성이 어색한 조합을 이뤄 공원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듯 하다. 너무 잘 꾸며놓은 것에 대한 반감, 정제된 인공미에 대한 반감. 이것 때문일까. 자연미는 찾아보기 어렵고 인공물만 두드러져 보이는게 현실이다. 환경단체들은 97년 경상감영공원 조성시 대구시에 자연친화적인 공원, 생태공원 등에 대한 조언을 수차례 했는데도 잘되지 않은 전례에 비춰 볼때 국채보상기념공원도 실패사례의 하나가 될 것 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나무가 빽빽히 들어서고 조류와 곤충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친화적 공간이 돼야 한다는 것. 공원조성 방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영남대 김용식(48·조경학과)교수는 대구시가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줄 것을 주문한다. "행정당국이 대구시 전체에 대해 구체적인 중장기 공원조성 계획을 확정해 보존과 개발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런 밑그림을 바탕으로 생태공원, 쉬는 공원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을 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제 여름. 대구는 특유의 찜통더위에다 바람 한점 없는 곳으로 돌변한다. 밤이면 더위를 피해 앞산, 팔공산 등은 물론이고 도시 외곽까지 달아나는(?) 시민들의 행렬이 줄을 이을 것이다. 이런 고생(?)을 할 필요도 없이 집부근의 공원을 찾을수 있는 여건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이희자(28·여·대구시 동구 도동)씨는 "달성공원이나 어린이대공원도 하루빨리 담을 헐어내고 개방하면 시민들의 여름나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라고 했다. 주위에 푸르름이 짙어질수록 마음도 함께 푸르러질 것이다.

〈글 : 朴炳宣 기자, 사진 : 閔祥訓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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