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내 개헌 포기'후 자민련 갈길

자민련이 갈림길에 서 있다. 당의 실질적인 오너인 김종필(金鍾泌)총리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연내 내각제 개헌 유보를 합의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김총리를 순순히 따를 것이냐 아니면 김총리의 뜻을 거스르더라도 제갈길을 갈 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다.

특히 내각제 강경파들이 포진해 있는 충청권 의원들의 고민이 깊다. 김총리의 연내 내각제 개헌 포기라는 불의의 기습을 당한 이들은 14일 저녁 여의도 한 음식점에 모여 장탄식을 쏟아냈다. "자민련의 존재 이유인 내각제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면 어떻게 표를 달라고 할 것이냐"고 입을 모았다. 일부 의원들이 "총리가 보도내용을 부인했다"며 자위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기류는 대책마련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15일 박태준(朴泰俊)총재가 귀국하는 대로 의원총회를 소집하기로 하고 김대통령과 김총리에게 내각제 개헌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내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김총리가 연내 내각제 개헌 포기의사를 보인 마당에 이같은 움직임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회의론이다. 이들이 연내 내각제 개헌 추진을 위해 강경입장을 보인 것도 김총리라는 거목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현재는 당사자인 김총리 자신이 백기를 들어 버렸다. 게다가 김총리는 경제문제나 공동여당 의석수 등을 들어 연내 개헌 불가에 대한 현실론까지 들고 나오고 있다.

또 자민련 내부의 이견도 문제다. 박총재를 중심으로 한 신주류는 충청권 구주류의 입장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공동정부 유지를 위해 김총리가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심지어 박총재 측근인 김현욱사무총장은 15일 김총리의 입장에 반발하는 원외위원장들과 조찬모임을 갖고 이 문제를 설득하고 나서기 까지 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김총리와의 결별도 불사해야 한다는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김총리에 대한 압박을 통해 연내 개헌포기 의사를 번복토록 한후 안될 경우 당을 깨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도 여의치 않다. 내년 총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과연 누가 김총리에게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처럼 선택의 폭이 줄어들면서 자민련 의원들은 점점 무기력증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李相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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