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한 친구가 나에게 핸드폰을 선물했다. 삐삐도 함께 였다. 그러나 나는 기쁘지 않았다. 나는 삐삐가 와도 그것을 체크하고, 저장하고, 지우는 기초적인 방식도 몰랐다. 내가 평생 기계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나는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사람이라는 걸 확신할 수 밖에.
친구들이 내 번호를 알긴 하지만, 내가 삐삐를 받아본 건 열 번도 되지 않았다. 어쨌든 그럼에도 다달이 요금은 청구되었다. 6군데를 돌아 다녀서야 겨우 삐삐를 해지할 수 있게 되자, 문득 나에게서 사슬이 풀리는 것 같은 즐거운 해방감이 밀려 왔다. 사람들은 뭘 그렇게 가져야 하지? 왜 이렇게 무장을 하면서 살아야해? 난 삐삐 하나 해지한 것만으로도 무장할 것이 없으니 죄를 지을 것 같지도 않은 무구한 마음이 되었다.
언젠가 산울림극장에서 공연할 때 강변도로에서 갇혀버린 적이 있었다. 공연 중엔 나는 언제나 공연시간 4시간 전에 집에서 떠나지만, 그 날은 모든 게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때 처음으로 핸드폰 생각이 간절했다. 나는 차를 멈추고 누구 핸드폰 없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극장에선 내가 이렇게 길이 막혀 못 가는 것도 모를텐데.
핸드폰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건 다시 그런 악몽이 닥칠까 두렵기 때문이다. 후배들은 그렇게 구형인 핸드폰을 보고 깔깔 웃는다. "선배님, 그거 가지고 계세요. 이제는 그거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어요" 하긴 요즘 나도 이렇게 큰 핸드폰을 보진 못했다. "이거 박물관 가야겠지?" 나도 웃음이 나왔다.
가끔, 한 손아귀에 딱 들어올 만큼 작고 가벼운 핸드폰으로 바꿔주겠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 구형 핸드폰을 버리면 또 하나의 즐거움을 잃게 되는 일이다. 하지만 난 생각한다. 내가 이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다시 핸드폰을 마련하게 되진 않겠지. 그럼 정말 모든 것으로 부터 해방될 수 있겠는데….
사람들은 나와 통화가 도대체 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하긴 급하게 차에서 연락할 때 말고는 열어놓지 않으니까 그럴 수 밖에. 016이 뭔지, PCS가 뭔지, 아날로그가 뭔지, 디지털이 뭔지, 알고 싶지도 않고 일부러 바보인척 사는게 내 스타일이니까. 핸드폰을 두 개나 갖고 다니는 사람은 그가 얼마나 유능한지는 살펴볼 여지도 없이, 꼭 두 발에 족쇄를 채우고 쇳소리를 내며 감방복도를 걸어가고 있는 것 같잖아, 야유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것도 몰라, 저것도 몰라, 하는게 무슨 커다란 미덕일까, 잠깐 반성하지만 여전히 나는 너무나 똑똑한 부류속에 끼고 싶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문명화되지 않은 내 삶이 오히려 더 유익할지도 모른다고 굳이 나를 고무하면서. 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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