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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겨울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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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십오년 전쯤 일이다. 어느 신문에선가 때아닌 겨울에 개나리가 피었다고 1면 사진기사로 크게 실은 것을 본 적이 있다. 한마디로 특종이었다. 겨울에 개나리가 피다니, 어불성설이지만 사실이었다. 그저 놀랍고, 신기하고, 이상하며 수상하기까지 한 현상이었다. 정말이지 희한한 일이었지만 이내 나는 그것을 천 년에 한번쯤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 속에서 밀쳐 두었다.

하지만 그 후로부터는 심심찮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개나리는 한 번 잃어버린 계절감각을 다시는 찾지 못하고 있다. 이젠 겨울의 엷은 햇살 아래 떨고 있는 개나리꽃을 보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이상한 일도 아닌 세월이 되었다. 흔히 있는 일이어서 이젠 신문의 구석진 곳에 가십거리로도 올라오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은 진달래꽃마저 개나리를 '동조'하며 시도 때도 없이 핀다. 그늘지고 눈 쌓인 산자락을 제법 물들이고 있는 꽃을 보면 나조차 계절감각을 잃어버린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럴까. 정말 봄꽃이 겨울에 핀다고 해서 단지 꽃들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꽃이 이상해지거나 수상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이상해진 것이 있다면 단지 그런 현상을 보고 이상하다고 판단하는 인간이 아닐까. 수상한 것이 있다면 그것도 단지 수상하다고 판단하는 인간이 수상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좀처럼 자연과 동화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오는 찌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비교적 사계가 뚜렷하다. 그래서 시인들은 세월이 가고 오는 것을 굳이 산술적인 의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표현할 수 있었다. 예컨대 황동규씨는 오래 전 '즐거운 편지'라는 시에서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라고 노래한다. 훌륭하다. 나는 '동업자'로서 이런 서정을 주는 사계에 사는 복을 오래 누리고 싶다. 머지않아, 신문에서 계절감각을 잃은 개나리나 진달래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기사를 읽고 싶다.

안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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