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김용주-경북대의대 교수·진단방사선과)

LA에서 샌디에이고 가는 태평양 연안 해안길은 우리 동해안처럼 굴곡은 없지만 무척 아름답다. 맑고 건조한 공기,투명한 햇살, 모든 풍경들은 가는 연필로 그려놓은 듯 선명하다. 키 큰 유카리나무와 잔디밭이 겨우내 초록색에 목말랐던 마음을 감싸준다. 바다를 향한 언덕마다 햇살에 빛나는 붉은 지붕과 하얀 벽의 집들. 미국내에서도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지역이라는 안내인의 설명이 자랑만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아득한 바다 쪽을 바라보면 금방 떠나온 집과 내 나라가 그립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이곳에 와서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태평양 서쪽 바다를 향해 울었다는 어느 친구 생각이 난다.

좋은 집과 신선한 공기와 햇살은 누구나 꿈꾸는 생활환경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하고 때로는 의견이 맞지 않지만 아껴주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이곳에 와서 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냥 투명한 햇살이 아름답다고 느껴질뿐.

유년시절 처음 고향집을 떠나올 때가 생각난다. 어찌 그리 서럽던지 밤마다 소리죽여 울었다. 그때는 왜 눈물이 그렇게 많았던지 이유를 분명히 몰랐지만 나이가 들수록 다시 눈물이 많아지는 것은 떠나야할 때가 가까워지는 때문일까.

기내에서 보여주는 우리나라 TV 단막극 중 두 노인과 고아들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보며 옆자리 동료에게 눈물을 감추느라 애를 쓴 뒤라 그런지 아득한 바다 저쪽이 벌써 그립다.

자세히 보면 길가 가로수와 잔디밭마다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물을 뿌리고 있다. 건조한 사막을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든 미국인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우리네 삶도 끝없이 노력하다보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멀리 언덕 위 색색깔의 크레파스로 그려놓은 듯한 광활한 화훼단지를 보며 아름다움이란 가꿀수록 더욱 값지다는걸 새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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