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도 돈선거라는 소리가 사방에서 높다. 30당(當) 20락(落)이라는 말이 보통으로 들리고 있다. 30억원 쓰면 당선되고 20억원 쓰면 떨어지는 선거라면 유권자도 후보자도 모두 범법자가 되는 선거다.
왜 우리 선거가 이렇게 되는가. 법을 잘 지키던 사람도 선거 때가 되면 법을 어기고, 이성적인 사람도 선거 때만 되면 머리가 도는 미치광이가 된다. 왜 그러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거슬러 올라가보나 내려와보나 여당 때문이다. 야당이 아니라 '오로지'여당 때문이다. 여당이 무리해서라도 어떻게든 선거에 이기려하기 때문이다. 관권이든 금권이든 사기든 다 동원해서 한 의석이라도 더 늘리려 하기 때문이다.
유권자는 그런 여당의 행태를 너무 잘 안다. 여당이 아무리 컨닝(cunning)해도 유권자들은 그들의 속셈을 꿰뚫어 보고 있다. 그런 유권자가 그런 여당의 돈을 왜 마다 할 것인가. 더구나 그 여당의 돈이 그 여당후보들의 피땀 흘려 모은 재산에서, 혹은 근검절약해서 쌓은 저축에서 나온 정당한 돈이 아니라, 이래저래 압력으로 여기저기 갈취해서 나온 부정한 돈이라면 어느 유권자가 그 부정한 돈을 마다 할 것인가. 어느 유권자가 그 부정한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받는데 죄스러움을 느낄 것인가.
이래서 우리나라 선거는 지금까지 여당 때문에 돈 선거가 돼왔다. 그래도 60년대 이래의 산업화세력 여당들은 독재를 했건 군출신이었건 그 부정한 돈선거를 치르면서도 산업화에 성공했다. 그 성공의 덕으로 1인당 80달러에서 1만달러 수준까지 GNP 높이를 올려 놓았다. 문제는 90년대 이후의 소위 말하는 민주화투쟁세력들의 여당행태다. 그렇게 민주화를 절규해온 사람들이 여당이 되어도 그 고질적인 여당행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달라짐의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년동안 몇몇 재선거.보궐선거를 치러본 사람들은 그 선거판이 얼마나 추악한 돈선거판이었는지 기억하고도 남을 것이다. 어떤 힘있는 여당후보는 50억원을 쓰고서 박빙의 차로 이겼다는 보도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화 투쟁을 해 온 사람들은 민주화도 성공못하고 산업화에도 기여못했다는 소리가 된다. 민주화를 자기식 논리의 '방임화'라 한다면 현 집권여당은 분명히 성공했다. 그러나 민주화를 선진국형의 '저비용의 선거'라 한다면 현 집권여당 역시 완전히 실패했다.
어떤 수를 쓰든 한 의석이라도 더 차지하겠다는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의 산업화 세력들의 여당행태다. 그 여당행태를 21세기 현재 여당이, 그것도 더 '무리하게', 더 '추악하게', 더 '범법적으로'답습하려 한다면 이야말로 '민주화 투쟁'이 아니라'범법화 투쟁'이다. 그것은 선거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새로운'문제의 발단'이다. 다른 나라에서 보는 '갈등 해소'의 선거가 아니라 새로운 '갈등 야기'의 선거가 된다.
우리 선거에선 어떤 일이 있어도 유권자를 탓해선 안된다. 정치인들은 으레 '수요가 있어서 공급이 있다'고 거꾸로 둘러댄다. 유권자가 돈을 원하니 정치인들이 부정한 방법으로도 돈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정치인의 거짓이며 왜곡된 여당행태다. 무리하게 이기기 위해서 쓰는 방법은 언제나 부정이 따른다. 유권자가 후보자에게 받는 돈은 그 부정의 대가다. '너희들의 부정에 눈을 감아줄 터이니 대신 돈을 내라', 그것이 유권자의 요구며 자기정당화다. 그 정당화를 고치라 한다면, 그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더구나 여당의 선거바람몰이로 내세운 사람 중에는 떳떳지 못한 사람도 적잖이 있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경쟁에 있어 승복이다. 그 '승복의 서약'을 수없이 하고도 헌신짝 버리듯 배신한 사람이 여당선거대책의 요직에 앉아있다면 유권자는 으레 '너희의 그 부정한 언설을 들어주마. 대신 돈을 내라'하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유권자의 잘못인가, 여당행태의 잘못인가. 여당이 바뀌지 않으면 돈선거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말로만 개혁, 개혁 하지말고 진정 개혁선거가 되도록 해보라. 어차피 2002년이면 또 심판받을 것이 아닌가.
연세대 교수.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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