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숨가빴던 제 16대 총선이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새천년 첫해 실시된 이번 선거는 한국 정치사에서 여러가지 의미와 과제를 남겼다.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 운동과 선관위의 후보자 전력 공개는 새로운 선거 행태로 자리했다. 한나라당의 영남 지역 싹쓸이에 따른 지역주의 부활은 지역감정 해소책을 과제로 남겼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열전 현장에서 후보자들과 호흡을 같이했던 취재기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편집자
-이번 선거 결과의 가장 큰 특징은 한나라당의 '영남 싹쓸이 현상' 입니다. 대구·경북과 부산·경남 지역을 통틀어 65개 의석중 무소속 정몽준(울산) 후보를 제외한 64석을 한나라당이 차지한 결과입니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조차 당초 압승을 예상하긴 했지만 '싹쓸이'로 까지 이어지자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또 비(非)한나라당 후보들은 '혹시나 하던 우려가 역시나'로 됐다며 몹시 허탈해 하는 모습이 역력 했습니다.
-한나라당의 압승은 한나라당 자체 인기보다는 반DJ정서가 반영된 결과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한나라당도 별로지만 DJ가 더 밉다는 결론이죠. 역대 최저의 투표율과 선거기간 내내 계속된 유권자들의 냉담이 이를 뒷받침 합니다.
-싹쓸이를 두고 신(新)지역주의 부활이라는 비판과 '영남민국'의 탄생이라는 자조론도 만만찮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또 지역 정치나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자민련과 민국당의 몰락도 지역 정가에서는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박철언, 이정무 의원조차 두 배 이상의 격차로 패배하는 등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모습 이었습니다. 민국당 김윤환 의원과 이수성씨의 일방적인 패배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인물 대결 구도가 사라진 것도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특징 중 하나입니다. '무조건 한나라당'이라는 정서가 깔리면서 비한나라당이나 무소속 후보들의 경우 자신을 알릴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조차 잃어버린 셈 입니다. 상대 후보를 가리켜 '성은 한이요 이름은 나라'라는 한 무소속 후보의 자조섞인 말이 흘러나올 정도였습니다.
-선거 운동기간 한나라당 일부 후보들이 보여준 불성실한 태도가 도마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타 후보들은 새벽별 보고 나와 밤이슬 맞는 강행군을 계속했지만 선거사무실을 지키거나 TV토론회를 거부하는 후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부 후보들은 선거 초반부터 아예 당선된 듯한 행동을 보여 비난을 사기도 했습니다.
-비록 지역에선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진 못했지만 총선시민연대의 낙천, 낙선 운동도 큰 의미를 남겼다고 볼수 있습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유권자들이 적극적인 주권 행사에 나선 셈입니다. 여기에 후보자 검증을 위한 선관위의 후보자 병역과 전과, 세금 납부 실적 공개도 큰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네거티브 선거 운동'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후보자 개인의 사생활이나 병역 문제만을 부각시키며 내 표 보다는 남의 표를 깍아내리는 부정적인 선거 운동이 활개를 친 때문입니다. 또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무차별적인 흑색 선전과 유언비어 유포, 흑색 유인물 살포 등 혼탁 정도가 심해졌습니다. 특히 안동의 모 후보 홈페이지에는 본사 정치부 기자의 이름까지 도용해 특정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글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또 한나라당 안택수 후보는 합동유세에서 상대 후보를 겨냥, '병신 발언'을 해 큰 물의를 빚었습니다.-이번 선거에서도 금품 살포 시비는 여전했습니다. 특히 선관위가 단속한 불·탈법 선거 운동 사례가 지난 15대 총선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나 일부 지역에서는 재선거가 예상될 정도입니다.
-유권자들의 불법 선거 감시 수준은 여전히 기대 이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포항의 경우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선거가 혼탁스러웠으나 유권자가 선관위나 공선협에 신고한 사례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포항 공선협의 경우 익명의 50대 남자가 불법선거를 개탄하며 포상금 1천만원을 기탁해 놓았으나 1건 밖에 지급이 안돼 900만원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관심을 끌었던 민주당의 '동진정책'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DJ가 직접나서 영남권 교두보 확보를 위해 공을 들였지만 마지막 희망이었던 봉화·울진(김중권)에서 조차 19표차로 석패하자 지역 민주당 인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특히 각 방송사의 출구조사에서는 앞선 것으로 예측된 탓에 충격이 더욱 컸습니다. 안동의 권정달 후보도 끈질긴 추격전을 펼쳤지만 끝내 주저 앉았으며 여론조사에서 앞서던 부산의 노무현씨도 결국은 한나라당 바람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선거때 마다 나타나는 지역 감정이 이번 선거에도 어김 없이 나타났습니다. 안동 지역의 경우도 선거내내 'DJ당은 안된다'는 말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지역감정은 시내 지역보다 오히려 농촌지역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 등 개표결과도 여도야촌 현상을 보였지요. 또 일부 후보 측은 노인층 유권자들을 상대로 '민주당은 빨갱이 당'이라는 흑색선전을 하는 등 선거중반부터는 해묵은 색깔론까지 되살아나 민주당 후보를 코너로 몰기도 했습니다.
-울진 지역에서는 이중당적 보유를 이유로 박영무씨의 후보 자격이 박탈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서로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지만 결국 김광원 후보가 승리함으로써 한나라당에 이득을 주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한편 대선출마를 내세웠던 이수성, 박철언 의원 등 지역 중진들의 대거 탈락도 큰 이변중 하나입니다. 허주의 몰락도 지역 정가에서는 아주 충격적인 일 입니다. 특히 일부 중진들은 유세에서 눈물로 지지를 호소했지만 결국은 무너지고 말아 동정을 사기도 했습니다. 한편 칠곡과 안동지역 선거는 사제간, 문중 조손(祖孫)간 대결로 비춰지며 관심을 끌었지만 제자와 손자의 싸움으로 끝났습니다. -끝으로 이번 선거는 개혁공천과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등으로 당초부터 선거문화를 바꿀 것으로 기대됐지만 결과적으론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특히 영남지역에서의 한나라당 싹쓸이 현상은 지역 발전과 지역 정치권에 두고 두고 짐이 될 전망입니다.
정리=李宰協 기자
참석자=총선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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