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0일은 월남전이 종전된지 25년 되는 날. 이를 앞두고 각종 학살사건 등이 잇따라 보도되고 있긴 하지만, 당시 '사이공'으로 불렸던 '호치민시티'가 동남아시아 한국인들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1975년 4월 종전 당시 그곳에 있던 교민은 200여명. 그러나 최근 7천여명으로 늘었다. 더욱이 지난해부터 경제위기가 풀리기 시작하자 더 증가하는 추세. 홍콩·자카르타·방콕·콸라룸푸르 등 동남아 각지에서 사업하던 교민들이 계속 옮겨 들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시 외곽 '팜반하이' 거리에는 작으나마 '한인거리'도 생겨났다. 식당을 위주로 호텔과 방앗간, 기원까지 그런대로 모양을 갖췄다. 모두 50여 업체.
물론 베트남에는 엄격한 의미의 '교민'은 없다. 이곳 정부가 이민을 안받기 때문. 따라서 누구나 업무용 비자 등으로 이곳에 머물면서, 6개월 마다 비자를 경신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전쟁 전부터 이곳에 생활터전을 마련했다가 귀국했던 사람들 중에 되돌아 오는 노인들도 적잖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일부 노인들이 신경통이나 노인병 등을 치료하기 위해 인근 탄다섬을 찾고 있기도 하다.
전쟁 당시 베트남 여성과 결혼, '라이 따이한'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냈던 국제결혼도 최근에 다시 늘기 시작했다. 공식 집계는 50여명이 그랬고, 비공식적으로 베트남인과 살고 있는 경우는 수를 세기가 어려울 정도.
500명이 채 안 되는 교민들이 살고 있는 수도 하노이와는 달리, 호치민은 일찌감치 자본주의 맛을 본 탓인지 사업할 분위기가 돼 있다. 여전히 싼 임금과 우수한 노동력이 있어 한인 사업가들에겐 매력적. 정부와 교민들의 합작으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인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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