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관이 죽어야 증시가 산다

'기관(機關)투자가 때문에 주식시장이 붕괴된다?'증권인구의 저변을 확대시키고 주가 급등락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할 기관투자가. 그러나 최근 주식시장이 폭등락 장세를 보이는 와중에 기관투자가들이 보인 행태를 두고 증권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더욱이 올들어 증시를 하락국면으로 몰고 간 '주범'이 기관이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기관투자가들이 막다른 코너에 몰리고 있다.

▲'버팀목'이 되지 못하는 기관

지난 17일 주식시장이 사상 최악 폭락사태를 빚자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은 '기관책임론'을 펴면서 기관들이 폭락장세를 떠받칠 것을 우회적으로 주문했다. 이에 투신 등 일부 기관들은 이날 2천400여억원을 순매수하며 외국인, 개인들이 던진 물량을 받아냈다. 미력이나마 증시의 버팀목 구실을 한 셈. 반면 은행들은 로스컷(손절매) 제도에 따라 1천200여억원을 순매도, 주가폭락을 부채질했다.

18일 주가가 급등세로 돌아서자 기관들은 전날 매입한 주식을 대거 팔아 상당한 단기차익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외국인투자자가 순매수로 돌아서고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던 개인투자자들이 매수에 나선 것과 대조를 이뤘다. 전날 종합주가지수 700선에서 사들였던 물량에서 수익이 발생하고 매수세가 형성되자 기관들이 눈앞의 이익을 노려 주식을 발빠르게 처분한 것. 결국 18, 19일 6천억원에 이르는 기관 매도공세 때문에 주식시장은 회복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사기업인 기관투자가에게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물량에 대해 지속적 보유를 주문할 수 없지만, '기관이 주식시장의 상승세에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올들어 전체적으로도 기관들은 지속적 순매도세를 보여 주식시장을 침체시킨 주범으로 손꼽히고 있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19일까지 기관은 3조9천여억원을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이 6조원을 순매수한 것과 정반대되는 양상. 종목별로 보면 기관은 이달들어 기계, 운수장비, 기타금융을 제외한 전업종에 걸쳐 매도했으며 특히 정보통신, 건설, 은행주를 집중매도해 주가하락을 선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매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기관들은 변명하지만 주식시장이 침체국면에 빠지는데 기관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게 됐다.21일 주식시장에선 오랜만에 기관이 매도물량을 크게 줄이거나 순매수로 돌아서 앞으로 기관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증시전문가들은 "앞으로도 환매부담이 계속 이어져 기관들이 당분간 대량 매수에 나서기는 힘들어 보인다"며 "어느 정도 환매가 마무리되는 5월말쯤 기관이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기관에 대한 비판 폭주

팍스넷 등 인터넷 증권사이트엔 기관들의 투자행태를 비판하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태백'이란 ID의 한 네티즌은 "투신의 무자비한 매물공세가 지속된다면 증시는 붕괴될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코스닥 시장에선 근시안적인 투신의 매물공세가 상승의 모멘텀을 꺾어 놓았으며 결국 환매사태를 부르고 투신은 다시 주식을 내다파는 전형적인 약세장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투신의 통폐합, 무능한 경영자 및 펀드매니저의 퇴출 등 조속한 투신구조조정만이 증시가 사는 길이라고 '태백'은 결론지었다.

ID가 '소스'인 네티즌은 "공모주를 저가에 잔뜩 받은 기관들이 이익실현한다며 주식을 다 털어내 개인투자자를 죽음으로 몰아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기관은 자신의 돈이 아니라고 손실보며 투매하고 있다"며 "증자물량 배정방법 개선, 기관보유 수량 공개 등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물먹어'란 ID의 한 네티즌도 "주식이 조금만 오르기만 하면 투신이 팔아치우기에 급급하다"며 "투신이 증시의 버팀목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정희'란 ID의 네티즌은 "매일 기관투자가의 우월적 조건을 이용하여 선물연계프로그램 매매를 일삼으며 시장의 체력을 저하시키는 악질적 매매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李大現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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