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지은 지 이십오년도 더 된 한옥이다. 겨울이면 외풍으로 콧등이 시릴 정도지만, 15년째 이 집을 버리지 못하고 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마당 하나 가득 하늘을 들여놓을 수 있으며 쏟아지는 햇발에 갓 삶은 빨래를 눈이 부시도록 희게 말릴 수 있다. 한여름, 뜨끈하게 단 마당에 쫙쫙 물을 끼얹으면 무럭무럭 김이 피어오르는 광경 하며, 낡은 양동이에 흙을 담아 방울 토마토를 키우는 재미란 가히 놀랄만한 것이다. 가을이면 떨어진 낙엽 쓸어 모으는 일 또한 여간한 재미가 아니다. 밤새 바람이 펄렁거려 선잠으로 뒤챈 날 아침에 뜨락을 내다보면 오!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마당에 발 디딜 틈이 없도록 빼곡하게 떨어진 낙엽이 얼마나 멋스러운지… 여드름이 쑹쑹 돋은 아들놈 친구들이 우 몰려와 탁구를 치고 마당이 꺼지도록 줄넘기를 하는, 그런 사사로운 기쁨을 나는 아파트 사람들에게 입이 닳도록 들려주고 싶다. 그렇다고 불편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다 예고없이 비가 오는 날은 비설거지에 바쁘다. 비설거지! 참 토속적인 말이다. 옥상에 줄줄이 널어 놓은 빨래를 걷어들이고 장독 뚜껑이 제대로 덮여 있나 확인하는 등 비를 맞혀서는 안되는 물건을 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하늘을 자주 올려볼 수 밖에 없다.
내 아이들은 이 손바닥만한 마당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 딱지치기를 하고,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겨울이면 마당 가득 쌓인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어 라일락 나무 곁에 세워놓곤 했다. 두 단지 가득 담은 김장을 계단 아래쪽 그늘에서 삭혀 겨울내내 물리지 않고 꺼내 먹는 재미까지 곁들인다면, 아파트 사람들 한 번쯤 주택에서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걸. 나중에 좋은 어른으로 자란 내 아이들이 자신들의 어린 날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이 집에서, 자신의 아이를 또 그렇게 아이다운 모습으로 자라게 했으면 하고 나는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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