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의 단심가를 부른 고려말의 정몽주가 조선왕조 수립에 협조를 거부하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던 선죽교(善竹橋)는 개성시 선죽동 남대문에서 약 1km 떨어진 계류에 놓인 고려시대 돌다리다.
폭 2.54m, 길이 6.67m의 이 다리는 고려 당시에는 선지교(善地橋)라고 불렀으나 정몽주의 피가 흘러내린 다리 아래 개천에서 대나무가 솟아올랐다고 하여 선죽교라 부른다. 굵은 돌로 난간을 돌려 놓은 것과 남간 없는 다리 2개가 나란히 있는데 난간을 두른 것이 선죽교다. 난간이 없는 다리는 1780년 정몽주의 후손들이 선죽교에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도록 난간을 만들면서 대신 설치한 것이다. 宋回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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