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전업 아빠

주역(周易)에서는 하늘은 양(陽)이고 땅은 음(陰)이며, 양은 남성이고 음은 여성으로, 음양의 조화가 천체우주의 요체라고 여겼다. 이같이 '남자는 하늘'이라고 노래한 대목은 판소리 '춘향가'에도 나온다. 이 도령은 첫날 밤 춘향에게 '너는 죽어서 글자가 되데 따지(地), 따곤(坤), 그늘음(陰), 아내처(妻), 계집녀(女)…. 나는 하늘천(天), 하늘건(乾), 볕양(陽), 지아비부(夫), 아들자(子)···좋을 호(好)자로 놀아를 보자'고 농을 건다.

아무튼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남자=하늘'이라는 가치관을 가져왔다. 특히 유교 사회에서는 삼종지의(三從之義)의 윤리관으로 아내는 자신을 희생시켜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지난해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성별에 따른 차별 교육이나 지도를 못하게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변화는 가사와 육아는 여자들이 할 일이고, 여자가 결혼하면 쉽게 직장을 그만두거나 남편 출세를 돕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풍조를 크게 바뀌게 하고 있다. 게다가 새 천년을 맞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가정이나 가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가족 해체'와 '열린 가족'에 대한 논의도 활기를 띠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20·30대 젊은 남성들 가운데 '전업 아빠'가 되기 위해 직장을 포기하거나 근무 시간을 줄이는 21세기형 '신종 아빠'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이같은 변화는 여성운동의 성과이기도 하면서 붐을 이루기 시작한 하이테크 통신업계의 유연한 근무 스타일에 의해 더욱 가속화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최근 래드클리프대학의 한 조사에서도 21~39세 남성의 5분의 4 이상이 '인생에서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며, 유연노동을 허용하는 일이나 직장을 선택하겠다고 응답했다. 또한 이들 중 71%는 가족과 시간을 더 갖기 위해선 임금이 깎이거나 돈을 덜 버는 것도 감수하겠다고 해 직업에서 보람을 찾는(79~86%) 40·50대와는 대조적이다. 이같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디지털 시대의 새풍속도들은 우리 주위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연출되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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