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시형칼럼-세계화는 잡종화인가

오랜 세월 단일 민족으로 동질 사회를 이루며 살아온 탓이겠지. 우리는 외래 문물에 대해 상당한 저항감을 갖고 있다. 호기심도 있고 동경은 하면서도 선뜻 남의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어쩌다 용감한 사람들이 외래 문물을 받아들이면 그를 이단시하고 배척했다. 백의민족을 더럽히는 원흉처럼 순수하지 못하다고 규탄했다.

해서 우리는 '다르다'는 것에 아주 민감하다. 우리와 다른 건 용납하지 못한다. 말씨, 억양이 좀 다르다고 이단시하고 차별하는 게 우리다. 지역 감정의 골은 아직도 깊고 아이들 세계에선 아주 왕따로 몰리기도 한다. 어쩌다 대화중에 영어라도 섞여 나오면 듣는 사람의 표정이 순간 달라진다. 시건방 떤다고 입을 삐죽거린다. 한자교육을 철폐한 것도 이러한 순수론자의 강변 탓이리라. 아직도 국제결혼에 상당히 부정적이다. 혼혈아를 '튀기'니 어쩌니 하면서 아주 경멸하기도 했다.여하튼 우리는 섞이는 건 순수하지 못한 걸로 매도해버리는 고약한 습성이 있다. 한국에선 '잡것들'이란 표현만큼 모욕적인 말이 달리 없다.

최근 심청전 발레가 외국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뉴스로 잠깐 본 장면이지만 참으로 우아하고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옆에서 함께 지켜본 어느 순수론자의 평가는 한마디로 잡것 짓거리라고 매도해 버렸다. 심청이 어떻게 서구적인 발레를 하느냐는 것이다. 최근엔 전통적인 한국것에 다른 문화를 접목한 게 많다. 당장 개량 한복만 해도 그렇다. 입으니까 생활하기에 편하고 좋던데, 순수론자는 그게 아니다. 양복을 입든지 아니면 전통적인 한복이든지 이도 저도 아닌 잡종은 안된다는 것이다. 사물놀이와 오케스트라의 접목도 이런 논리대로라면 말도 안되는 '짓거리'다.

마구잡이로 밀려오는 외래 문물 앞에 우리의 전통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러다간 한국적인 정체성마저 상실될 위기에 놓여있다. 우리 걸 지켜야 한다는 순수파의 논리도 이런 차원에선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제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세계화'는 생존을 위한 절박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는 현실도 부인할 수 없다.

얼마전 미국 법원은 아이를 체벌한 교포 부모를 무죄로 석방한 보도가 있었다. 아이의 훈육을 위해 체벌이 용인된다는 한국적 전통을 인정한 것이다.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수용한 것이다.

미국은 다민족을 융합시켜 '미국적'인 것을 창출해 내려는 시도와 함께 모자이크 이론도 적용하고 있다. 흑, 백, 황… 모두들 고유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힘, 그게 미국의 저력이다.

이웃 일본도 영어를 제2외국어로 하자는 데 큰 이견이 없다. 사실 일본은 영어가 생활 깊숙이 아무런 저항없이 들어와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부스키 호텔엔 '성모 마리아 부처님' 조각이 당당히 서있다. 우리 나라에 이런 조각이 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고소를 금할 수 없다.

지난 주 질녀가 결혼하는 아침. 청바지를 걸치고 미장원엘 가더니 화사한 드레스 차림으로 식장에 나타났다. 예쁜 얼굴에 소위 신부화장을 하고 나니 영 꼴이 아니었다. 그리고 폐백, 연지 찍고 비녀에 한복. 다시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양장 차림이다.

휴우! 그래 세계화는 해야한다. 무조건 우리 것만 고집하는 순수파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안해도 될 것 마저 해야 한다는 것도 넌센스다. 가령 결혼식 말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이 말의 참 뜻을 새길 수 있어야 한다.

성균관대 의대교수·신경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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