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대 후반 노동계의 욕구는 봇물처럼 터져 나와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포화상태였다. 쟁의행위를 거의 원천봉쇄당한 억압의 시대에서 벗어난 노동자들의 요구는 노동환경 전 부분에 걸친 것이어서 안전장치에 안주하다 돌발사태를 맞은 기업주들에게는 격랑이었다. 임금 20~40% 인상, 근로시간 단축, 연.월차수당지급 등 요구와 쟁의, 쟁의 행위 조건 완화 등은 노동자들의 욕구분출 이전의 노사관행으로 보면 상상도 못한 혁명에 가까운 조건제시다.
사용자측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응이 시급한 숙제로 떠올랐고 노동자가 내건 화두(話頭)는 개혁이었다. 근로조건 개선의 장애요인을 점차 없애기보다는 한꺼번에 고쳐보자는 쪽에 무게가 실려있었고 강경한 자세가 늘 흐름을 압도해간 것은 당시의 상황이다. 어쨌든 지난 87년은 노사 양쪽 모두 새로운 노동환경조성(造成), 변화모색으로 밤과 낮이 없었던 시기였다.
◈노사의 입장차이
2000년대를 맞는 첫해, 올해 노사관계는 많은 변화가 예고돼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각각 정한 임금인상률 두자릿수 관철, 법정근로시간 단축 등은 80년대 후반의 노동계가 내건 조건과 닮은꼴이다. 양대노총은 IMF관리체제 이후 회복한 경제에 대한 성과를 노동자들에게 배분차원에서도 임금 두자릿수 인상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사용자측의 견해는 5% 전후가 적당하다는 논리다. 이런 임금인상률을 둘러싼 이견(異見)은 단위사업장별로 이루어지는 협상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어서 핵심 쟁점(爭點)에서 비켜서있다.
노동환경에 변화를 줄 쟁점은 법정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주5일 근무제와 근로기준법 개정 등 두가지에 모아진다.
노동계는 우리 나라의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일주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여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라는 주장이다. 노동계의 요구에 대한 사용자 쪽 반응은 부정쪽에 서있다. 법정노동시간 단축이 휴일근로에 대한 할증으로 기업의 인건비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논리의 전개다. 수익성 악화와 이에 따른 신규채용 감소로 이어져 오히려 고용악화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굳이 법정 노동시간 단축문제를 논의한다면 임금삭감과 연동 해야 한다는 자세다.
노동시간 단축은 삶의 질을 높이는 포괄적인 기능과 함께 산재율(産災率)을 낮추고 노동집중도를 강화한다. 생산성 증가와 일자리 나누기 효과도 있다고 하고, 거창하게는 여가확대 문화가 활성화된다고 했다. 당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일하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씩 줄어드는 40시간 노동은,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줄어든 지난 89년과 비교할 때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패러다임 필요
노사양쪽에 크게 변화를 줄 촉매제는 노동부 등 관련부처가 계획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대수술'이 아닌가 싶다. 법은 현실과 반걸음씩 뒤처져 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은 그동안 변화된 경제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노사양쪽이 같이한다는 판단이다. 정부가 핵심사항으로 거론하는 근로시간, 휴일, 연.월차휴가, 여성의 생리휴가, 산전휴가 등은 법의 손질 수준에 따라 생활의 형태나 수준도 결정이 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항은 이해단체끼리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기 때문에 올해의 노사관계는 어느 때보다 파고(波高)가 크게 일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진통 끝에 변화는 온다.
세상의 모든 일은 변화모색이라고 한다. 그래야 산다는 게 또 일반적인 말이다. 가끔 강경 발언이 세력을 얻어 다수의 의견을 침묵케 하는 노동현장에서의 적절한 노동자의 요구는 상쾌한 변화다. 조금은 부담이 가도 소화할 수 있으면 받아들이는 것도 사용자의 산뜻한 새로운 모색이 아닌가 싶다. 분명한 것은 명령에 의해 마지못해 하는 아래로부터의 변화는 겉만 시늉낼 뿐 아무 것도 아니다. 사용자가 변하면 절반이상은 성공이고, 원만한 대화.경영 활로(活路) 개척 등 길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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