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운동은 내친구-대구동구보건소장 김효진씨

질병은 파괴적이다. 그러나 생명은 더 건설적이다. 그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그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중 몇개가 의지와 운동 같은 것들이다.

여의사 김효진. 올해 52세의 대구 동구보건소 소장. 키 155cm 몸무게 50kg에 허리 26인치. 얼른 지나치는 사람들은 김 소장을 기껏 40대 초반 정도로나 볼 뿐이다. 활력도 넘쳐 보인다. 더욱이 의사라지 않는가?

그러나 놀랄 일. 건강에 관한 한 김 소장 만큼 위태했던 과거를 가진 사람도 많잖다. 더 놀라운 것은 그걸 이겨 냈다는 점. 그리고 그 힘든 과정에서 늘 힘이 된 것은 운동이었다.

김 소장은 1972년도에 경북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4년 동안을 화학 선생님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1977년엔 성베네딕도 수녀원에 입소했다. 수녀가 된 것. 이어 1981년에는 졸업 9년만에 다시 대학에 입학했다. 계명대 의대 본과1년 편입. 파티마병원을 운영하는 소속 수녀원에서 수녀의사 양성을 위해 김 소장에게 기회를 준 것. 여기까지도 그런대로 평탄한 일상.

그러나 운명은 1985년부터 김 소장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의대 재학생 시절이던 이해에 덮쳐온 불청객은 간염. 절대안정이 필요한 병이라, 수도생활이나 의대 공부, 더욱이 그 둘을 함께하는 것은 무리였다. 탈은 이런 상황을 무시해가며 의사고시 준비에 매달린 것.

합격은 했지만, 합격자 명단을 확인한 뒤 김 소장은 그 자리서 쓰러졌다. 스트레스와 잠 부족이 간염을 악화시켜 간경화를 부른 것이었다. 20일간의 혼수상태, 6개월간의 입원… 최소한 수도자의 길은 포기해야 했다. 다시 속인. 하지만 이 첫번째 시련은 수녀원 시절부터 하던 참선 및 인도 요가, 그리고 요양이 이겨내게 해줬다. 공들인 수영 같은 운동도 마찬가지.

그렇지만 김 소장이 몸을 추스러 다시 세상으로 나선 6년 뒤, 겨우 40대 초중반인데도 이번엔 중풍이 덮쳤다. 1992년 5월, 동구보건소 진료의사로서 활동하던 중이었다. 더 자세한 병명은 뇌경색. 약물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세는 계속 나빠져 갔다.

치료하던 의사는 만류했지만, 반신불수가 된 여의사는 뿌리쳤다. 입원 5일만에 휠체어를 탄 채 퇴원한 것. 그리고는 곧장 운동에 매달렸다. "퇴원 하자마자 바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걷기와 팔 들어 올리기를 하루 10시간씩은 했을 겁니다. 그 덕분에 넉달 정도 지나면서 혼자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때 누군가가 태극권이 재활운동에 좋다는 얘기를 하길래, 바로 동부정류장 부근 체육관을 찾았습니다좭

태극권은 김 소장의 몸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매일 하루 90분씩의 운동이 그렇게 불편하던 몸을 기적처럼 치료해 낸 것이다.

지금 김 소장은 의술 못잖게 운동을 믿는다. 작년 7월부터는 동구청 체력단련실에서 매주 한차례 주민을 위한 태극권 교실을 열고 있다. 처음 5~10명 밖에 안되던 참가 주민이 지금은 80여명에 이르렀다. 암·중풍·관절염·오십견·당뇨·고혈압 등을 낫우겠노라 작심하고 달려든 사람도 50여명이나 된다.

올해 들어서 김 소장은 '집에 누워 있는 중풍환자'를 위한 프로그램까지 시작했다. 태극권 사범을 공공근로 사업의 하나로 활용해 파견, 집에 누운 환자들을 돕기로 한 것. "10년 이상 누워 있던 환자가 다른 사람 손을 잡고 마당까지 나왔습니다. 환자가 너무 기뻐 눈물 흘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비길데 없는 보람을 느꼈습니다좭 자신을 얻어 최근엔 수성구 파동 장애인 복지관도 찾아 중풍환자에게 태극권을 가르치고 있다.

내년까지 10명의 환자를 일어서게 하리라는 김 소장. "하느님은 이웃을 내몸 처럼 사랑하라 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려면 먼저 내몸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건강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지요좭

사람은 살아 가면서 때로 극복하기 힘든 시련과 맞닥뜨린다. 그것이 경제적 어려움이라면 또 어찌해 보련만, 사람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난치병이라면… 의사로서 30대에는 간경화와, 40대에는 중풍 반신불수와 싸워야 했던 여의사 김효진. 신은 인간에게 극복할 수 있는 시련만 준다고 했던가. 그는 일생에 두번이나 찾아온 난치병과 싸워 끝내 이겨 냈다. 그리고 그를 승리자로 만든 것은 의술만이 아니었다. 李鍾均기자 healthcare@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