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워크피아-제도 맹점 불거져 곳곳 파열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전부터 삐걱대고 있다.

행정기관의 시행절차와 준비뿐아니라 제도자체의 맹점이 속속 불거지면서 제도 전반에 걸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시민단체와 산하 행정기관의 비판과 질의, 문제제기로 인해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법시행 기준의 가닥조차 제대로 잡지 못해 허둥대고 있다.

복지부는 제도시행을 불과 5개월 앞둔 이 시점까지 법시행령을 수시로 바꾸고 있는데다 수급대상자 추정을 하지 못해 예산확보에도 난항을 겪고 있다. 게다가 일선 동사무소 실무자들은 법해석에 혼선을 빚는가하면 과중한 업무로 인해 대상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는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생산적 복지'라는 거창한 명분으로 도입된 이 제도가 중앙부처와 실무진사이의 '상-하 네트워크'가 붕괴되면서 큰 차질을 빚고 있다.

복지 관련 사회단체들은 부양의무자 재산기준, 소득공제율, 제도의 사각지대 등을 예로 들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대상자 선정기준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실무담당자인 사회복지전문요원들에게 수급대상자 선정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이들의 업무여건을 개선하지 않는한 10월 이후 제도시행에 따르는 시행착오가 자칫 복지정책 전반을 흔들리게 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태

대구 모 동사무소 사회복지전문요원은 "최근 한달 동안 중앙부처에서 내려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관련 공문이 파일 한권에 이른다"며 "수시로 바뀌는 시행령으로 법해석을 제대로 못하는 바람에 지역 복지전문요원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5월 이후 보건복지부가 지방자치단체에 보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관련 공문은 수급대상자 금융자산조회변경, 재산기준 보완, 부양능력기준변경, 승용차 관련 재산기준변경 등 20건이 넘고 있다. 복지전문요원들이 수급대상자 실태조사를 벌이기보다 공문해석에 매달려야 할 형편이다. 게다가 대다수 공문이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고 있으나 대구지역에서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는 동사무소는 거의 없어 일일이 구·군청과 시청 해당부서에 문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법시행 실무자인 사회복지전문요원들은 중앙부처가 수급대상자에 대한 명확하고 통일된 선정기준을 마련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예산확보와 수급신청자의 대량 탈락사태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지역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 신청자는 5월31일 현재 7천409가구 1만9천838명으로 기존 생활보호 및 한시적생활보호대상자 5만9천88명의 33.5%에 이른다. 전국의 경우 생활보호 및 한시적생활보호대상자 147만7천183명,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 신청자 30만8천399명로 전국 생보자 대비 수급대상신청자 평균비율이 20.8%여서 대구지역 수급신청자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수급대상 신청기한이 지난달 19일자로 철회됨에 따라 오는 10월까지 신청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당초 수급대상 신청자를 기존 생보자의 30%정도로 예상했다가 최근 15%정도로 낮춰 추정하고 있어 결국 수급대상 신청자의 대거 탈락사태가 예상되고 있다. 대구의 경우 보건복지부 추정에 따르면 최소한 신청자의 절반 가량이 탈락할 것으로 추산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올바른 정착을 위한 대구시민연대'(대구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수급대상신청자의 축소는 관련 예산을 줄이려는 중앙부처의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풀이하고 있다.

은재식 '대구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홍보예산을 1억2천만원 정도로 책정하면서 적극적인 홍보를 펴지 않는 것은 예산을 줄이려는 속셈"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정부가 당초 예상한 신청자수보다 수급대상자가 크게 늘 경우 예산확보책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는 것.

대구시를 비롯한 전국 지방자치단체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관련 예산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대구시 관계자는 "어차피 국비 80%, 시비 20%의 예산이 반영되기 때문에 중앙부처가 수급대상자를 선정해 예산을 책정하면 그때가서 생각할 문제"라고 말했다.

▨제도상 맹점과 개선방향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이후 법시행령을 수차례 보완, 변경했으나 여전히 많은 맹점이 노출되고 있다.

복지부는 특히 지난달 13일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자 선정기준과 관련해 소득·재산기준, 부양의무자범위 등 상당수 조항을 보완했다. 그러나 재산산정시 주택전용면적기준, 부양의무자 재산기준, 소득공제율, 의료급여, 법 사각지대 등과 관련한 상당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우선 재산기준 설정에서 면적기준의 경우 현행 자가 15평(전용면적), 임차가구 20평을 초과할 경우 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되고 있어 중소도시나 농어촌 현실을 무시한 조치라는 비판이다. 물론 읍·면지역 소재의 건축연도 15년 이상주택 등은 면적기준 적용에서 배제되지만 가족 수와 지역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맹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부양의무자 재산기준 설정에도 비현실적인 측면이 많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피부양가구를 가진 부양의무자의 경우 소득이 전혀없다하더라도 재산액이 7천800만원 이상이면 부양의무가 있는 것으로 판정된다. 이는 부양의무자가 결국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가족과 피부양가구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점에서 빈곤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자에 대한 7개 급여중 생계급여를 제외한 주거·의료·재활급여 등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어 시급한 대책이 세워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득공제율과 관련, 일반근로 및 사업소득의 경우 2년뒤인 2002년에야 소득공제율이 적용되고 장애인과 학생,공공근로소득에 대한 소득공제율도 당초 방침보다 훨씬 낮은 10~15%로 한정돼 개선이 필요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이라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도 소득공제율은 상향조정되는게 바람직하다는게 실무자들의 판단이다. 이와 함께 고액의 진료비가 지출되는 만성질환자나 장애인에 대한 의료급여 적용이 절실한 형편이다. 특히 제도시행 연도나 다음 연도에 수급대상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 '차상위계층'의 경우 개인별 의료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수급대상자의 양산을 낳을 소지가 많다는 것.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 계층에 대한 대책마련도 시급한 당면과제로 꼽히고 있다. 주민등록지에 거주하지 않는 쪽방거주자나 노숙자, 별거자, 종교단체 등 임시거주자 등은 수급대상자 선정에서 제외되고 있는 실정에 비춰볼때 법시행으로 인한 사회안전망구축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제기다.

'대구시민연대' 등 복지관련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부실금융기관이나 기업구조조정에는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쏟아내고 있으면서도 빈곤층에 대한 복지지원에는 인색하다"며 "기왕 생산적 복지를 표방하면서 복지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과감한 투자로 제대로 된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金炳九기자 kbg@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