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윤기를 더해가는 나뭇잎들이 우리 마음을 푸르게 물들이는 계절이다. 동네 뒷산에 올라 혼자 오솔길을 걷노라면 자연의 속살이 풍기는 짙푸른 향기를 타고 육신의 먼지가 모두 빠져나가고, 활기찬 새떼의 날갯짓 처럼 새로운 영혼이 솟아나는 기분이 든다. 세상이 이렇게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 찬 날에는 마음 속 그리움조차 병이 될 듯하여 생각나는 대로 흥얼흥얼 유행가라도 읊조리고 싶은 느낌이다. 그러나 우리가 뒤얽혀 살고 있는 이 티끌세상에선 진정한 6월의 푸르름이나 향기를 찾기 어려우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특히 거의 매일처럼 보도되는 성폭력 사건은 천지를 온통 수컷 냄새로 가득 채운 것 같아서 그 틈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곤혹스러울 지경이다.
##공존 공생의 법칙
자연의 아름다움은 공존(共存)으로부터 나온다. 어디, 도토리나무가 은사시나무를 질투하고 끈끈이주걱이 장미꽃이 되고 싶어 성형외과로 달려가는 걸 본 일이 있는가? 공존이란 한마디로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 가치를 내 것과 동등하게 여기고 존중해 주는 것을 말한다. 오로지 나만이 존중되고 남이 무시될 때 공존의 향기와 푸르름은 모두 사라지고 만다. 대신 상극(相剋)의 폭력성이 그 징그러운 짐승의 이빨을 드러낸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이 신록의 6월에 열린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반세기가 넘는 뿌리 깊은 상극이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남북을 잇는 백두대간의 푸른 등줄기처럼 싱싱한 상생(相生)의 옥토를 마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양쪽 모두가 그 동안 일방적으로 키운 자기만의 사고방식을 버리는 일이다. 공존의 언어를 포기한 일방통행식의 대화란, 대화를 가장한 폭력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사랑이 없이 겉으로만 화해의 제스처를 쓰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반목과 질시를 부를 수 있다. 내 자존심이 소중하면 남의 자존심도 소중하고 내 밥그릇을 채우려면 남의 밥그릇부터 살펴보아야 하는 까닭이다.
##일반적 인정이 필요
며칠 전 산을 오르는데 한 아이가 몽둥이로 길가의 아카시아를 난폭하게 후려치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 안된다고 꾸짖었더니 아이는 아카시아가 산의 경치를 해치는 못생긴 나무라고 대답하면서 오히려 장한 일을 했다는 표정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누가 그런 소릴 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아빠가 가르쳐주었다는 것이었다.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 폭력성의 실체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그때 그 아이가 휘두르는 몽둥이에 비명을 지르면서 찢겨지는 아카시아 가지들을 통해서 똑똑히 확인했다. 진정한 화해를 위해선 기존의 모든 편견과 억측을 버려야만 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회담에 임하자
서로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상대편보다 잘나 보이려고 꾸미거나, 없는걸 있는 것처럼 속여서는 더욱 안된다. 화장발이란 한계가 있는 것. 머지않아 본래의 모습이 탄로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서로 경쟁하듯 요란한 눈요기거리를 회담 테이블에 내놓기보다는 민족의 동질성에 기반을 둔 상호 이해와 신뢰감 구축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우리 민족은 순수해질 필요가 있다. 그 어떤 정치적 이익이나 경제적 이익도 민족의 미래보다 앞설 수는 없다.
6월의 산은 무척 너그럽다. 잘 생긴 아름드리 나무와 상처나고 뒤틀린 잡목을 가리지 않고 함께 포용하여 푸르름으로 빛내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남북회담도 이렇게 푸르고 싱싱하기를! 등푸른 생선처럼 어두웠던 지난 세월의 물살을 힘차게 가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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