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바뀐 맞선풍속

얼마 전 난생 처음으로 맞선을 봤던 김태완(29·대구시 이곡동)씨. 어떤 옷을 입고 나갈까 고심하던 그는, 선배 조언대로 예의를 갖춰 정장에 넥타이를 맸다. 스튜어디스라던데 꽤 예쁘겠지?

그러나 실제 만난 순간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머릿속에 그리던 상대 규수 모습도 저멀리로 달아나 버렸다. 늘씬한 몸매에 찢어진 청바지, 거기에 선글라스까지! 만남은 대번에 엉망이 돼버렸다. 서로의 외모에 대한 놀라움과 실망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

신세대들의 맞선 풍속도가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새로운 가치관을 추구하는 신세대들의 취향에 따라 맞선도 '바꿔, 바꿔!'가 한창인 것.

무엇보다 '남성은 넥타이 정장, 여성은 치마 정장'이던 옷차림 정식이 깨진 게 대표적 변화. 김씨가 만났던 여성만큼은 파격적이지 않더라도,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신세대답게 맞선 복장도 캐주얼 차림으로 바뀌고 있다. 남성 경우 딱딱한 정장 대신 세미 정장, 답답한 넥타이 대신 니트 차림으로 편안함을 주고, 여성은 바지 정장으로 활동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

맞선 장소도 바뀌었다. 예전의 호텔 커피숍보다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일반 커피숍이 인기. 양가 부모나 주선자가 함께 맞선 장소에 나오는 것도 꺼려, 미래의 사위·며느리감이 궁금한 부모들은 몰래 숨어 훔쳐보는 경우도 적잖다.

컴퓨터와 함께 자란 디지털 세대 답게 배우자를 고르는 방법 역시 정보 지향적. "나무랄데 없는 신랑신부감"이라는 권유만 믿고 나갔다가 낙망하기 일쑤였던 옛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정확한 신상명세에서 얼굴 사진까지 사전에 최대한의 정보를 입수, 실속있는 만남을 추구하고 있는 것.

아예 직접 인터넷 맞선 관련 사이트를 찾아 다니며 자신의 이상형을 골라 '사이버 맞선'을 보기도 한다. 배우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원하는 신세대들의 요구에 맞춰 전문적인 결혼정보 업체도 급증, 시장규모가 500억원대에 이른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결혼을 전제하지 않은 동거가 늘고 있는 것처럼 신세대들은 결혼과 연애 상대를 뚜렷이 구분짓는 것이 특징.

최근 결혼정보 회사인 듀오 대구지사가 미혼남녀 1천400여명을 대상으로 배우자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남자는 가장 고려할 점으로 '성격'(남 37.1%, 여 29.2%)을 꼽았다. 2위 항목은 외모(25.5%). 이것은 연애 상대일 경우엔 1위를 차지하는 것이지만, 배우자 자격에서는 중요도가 밀려난 것. 그 다음으로는 배우자의 직업(13.2%)을 적시, 맞벌이를 선호하는 실리주의적 면을 반영했다.

여성도 배우자의 첫째 고려할 항목으로 성격을 꼽았지만, 바람직한 성격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는 과묵해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유머있고 밝은 성격'(53.2%)을 선호하는 신세대 여성들이 는 것. 다음으로는 직업(26%)과 학력(17.6%)을 중시했다.

"치과의사라고 어머니 친구분이 소개해 맞선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고시공부를 하고 싶은데 일을 그만 두면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겠느냐는 거예요". 직장여성인 김지혜(27·대구시 봉덕동)씨는 요즘 맞선에 나오는 실속파 남성들의 특징을 이 말로 대변했다.

몇년 전만 해도 맞선 비용은 남성이 치르는 게 보통이었지만, 지금은 더치페이가 더 일반화 됐다. 남성이 차 사면 여성이 밥 사는 방식. 비용을 대등하게 나눠 부담하는 것이다.

애프터 신청도 남성이 먼저 해야 한다는 원칙이 깨졌다. 남녀 모두 다투어 그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 자신의 연락처를 주기보다는 상대방 연락처를 받으려하는 것이 그 수단. 주선자를 생각한 체면치레 애프터 신청은 어림도 없다. '싫다' '좋다' 의사표현이 분명하다.

이혼율이 급증함에 따라 20대후반 내지 30대의 이혼 남녀 재혼 맞선도 증가하는 추세. 별도의 전담팀을 만드는 결혼정보 회사들이 늘 정도이다.

한남제 교수(경북대 사회학과)는 "중매에서 낭만적 연애결혼으로 선호가 바뀐 뒤, 지금은 다시 중매·연애 혼합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남녀간의 감정을 중시하면서도 경제력·외모 등 감각적인 조건을 따지는 게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라고 말했다.-金英修기자 stella@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