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세대 '일본열풍'이상과열

28일 오후 대구시 중구 중앙지하상가의 한 문구점. 하교길에 쏟아져 나온 교복 차림 학생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이들이 고르고 있는 것은 일본 인기 연예인 사진,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들. 학생들은 일본 최고 인기 가수 아무로 나미에, 형형색색 물들인 긴 머리의 인기 록 그룹 X-재팬에 탄성을 지르며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10대와 20대 사이에는 일본가요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인근 리어카상에서는 '글레이', '라르크', '우타다 히카루' 등 일본 인기가수들의 노래가 국내 인기가수들의 인기곡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모두 일본 원판을 복제한 불법테이프다.

이번 3차 일본문화 개방조치에서도 일본원어 가요앨범을 제외한 것과 상관없이 일본 인기가수들의 음반은 이미 국내에 수십만장씩 나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1이라는 김모(17)양은 "청소년 사이에서는 이들 음반 돌려듣기가 성행하고 있다"며 "인터넷에서 MP3파일로 일본노래를 그대로 다운받아 배우는 것도 새로운 풍조"라고 말했다.

그 바람에 노래방에서도 일본노래 특수가 일어, 대부분 노래방들이 '엔카'에서부터 신곡까지 일본가요 수백곡씩을 갖춰놓고 젊은이들을 부르고 있다.

일본가요 열풍은 PC통신을 타고 청소년 사이에 급속히 번져 인기가수 팬클럽과 '겐신', '사쿠라' 등 인기만화 팬클럽이 수십개에 이를 정도다.

이들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뮤직비디오, 방송출연물 등을 함께 돌려보거나 시사회를 갖기도 한다. 또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집, 일본으로 공연관람 원정을 가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본 문화 선호현상은 또 중·고생 사이에 일본어 배우기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번역없이 그대로 들어오는 가요, 컴퓨터게임, 만화, 잡지, 애니메이션 등을 즐기기 위해 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우거나 독학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대구에서 문을 연 한 일본 전문 카페에는 일본어와 일본문화 알기 소모임이 8개 정도이며 회원도 100명 가까이에 이른다. 이 곳에서는 하루종일 일본 비디오와 음악이 공연되며 벽에는 일본 만화 수십권이 꽂혀 있고 주문도 일본어로 받고 대화도 일본어로 이뤄진다.

중학교때부터 일본만화를 봤다는 대학생 이모(20·여)씨는 "일본 만화는 섬세한 터치가 특징"이라며 "인쇄수준도 우리나라보다 높아 소장하는 책도 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문화의 선호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일부 가요의 경우 가사가 선정적인 내용이 많으며 만화·애니메이션은 살인, 폭력 또는 자극적인 성묘사가 그대로 담겨있지만 아무런 여과없이 범람하고 있다.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조성호(42)교수는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 무방비로 일본 하위문화에 노출될 경우 가치판단 혼란 등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음성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일본 가요음반 유통에 대해서도 당국의 정책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李尙憲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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