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경호 세상읽기-고인물에 물꼬를 터주듯

60여년 동안 정권을 잡던 서인(西人)들이 물러나고 남인들이 들어섰다. 이들의 의욕은 대단했다. 그러나 이들은 쌓이고 쌓인 적폐를 한꺼번에 고쳐야 한다는 조급한 생각으로 지나치게 서둘렀다. 이들은 위로는 종통(宗統)을 확립하기 위해서 예론(禮論)을 잘못 적용했다는 이유로 송시열 일파를 몰아내고 아래로는 시정의 자질구레한 일에 이르기까지 관여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대사헌은 한성부를 경유하지 않고 직접 이런 결재를 내렸다.

"근자에 이르러 서민의 혼례와 상례가 지나치게 사치하니 각부는 이런 사례와 함께 남녀가 혼인 시기를 잃는 사례도 함께 적발해 올리도록 하라!"

이에 해당 부서에서는 사대부가의 상례가 있을 때에는 금리(禁吏)들을 내보내 염하는 것을 감시하도록 했으며, 혼사에는 여의(女醫)를 보내어 신부의 나이를 조사하는 한편으로 혼례가 특히 사치하게 행해지지 않는가 살피게 했다.

대신들의 물갈이가 끝난 다음 이들은 각지의 수령 방백을 모조리 바꾸었다. 순순하게 파직시킬 수 없으므로 현직에 있는 자들이 과거 몇십년에 걸쳐 저질렀다는 비행을 암행해서 혹은 파직시키고 혹은 죄를 물어서 귀양 보냈다. 그들을 암행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납득할만한 트집을 잡아야 하는데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므로 백성으로 하여금 관리의 비행을 고자질 하도록 충동질했다. 그 결과 무고하고 모함하는 투서가 산처럼 쌓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남인들의 정권은 겨우 7년으로 막을 내린다. 이 정권이 무너진 원인은 너무나 복잡해서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우나 조정이 서민의 일상에 대해서까지 지나치게 간섭한 것이 그 직접적인 동기였다.

정치란 물을 흘러가게 하는 것과 같다. 고인물에는 물꼬를 터주고 막힌 곳은 뚫어야 한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할 것은 물을 거꾸로 흐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물을 역류하게 하려면 무리가 따르고 무리수는 백성의 원망을 자초하며 백성의 원망이 시작되면 정권은 무너진다. 다스리는 일의 요체는 조정이 백성의 삶을 간섭하는 그 한계점을 적절한 선에서 잘 조정하는 데에 있다.

책임진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이 혹시 백성의 삶을 위해서 오히려 훼방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을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기껏 잘 한다고 하는 일이 오히려 백성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하지 않음만 못하다.

우리는 날마다 개혁과 혁파의 목소리를 듣는다. 소리는 요란하고 높은데 백성의 의식과 삶이 크게 달라지는 것 같지 않아서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럴가?

백성은 편한 것을 좋아하며 오랜 관행에 따르고 싶어한다. 그런데 개혁은 옛 것을 고치고 바꾸면서도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개혁은 덕으로 다스리는 것과는 달라서 오히려 백성의 뜻에 역행한다고도 할 수 있다. 개혁하기가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민심에 순응하면서 올바른 교화를 펼쳐 나가려면 장구한 세월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장구한 세월을 참고 기다릴 수 없는 위정자들은 툭하면 개혁정책을 펴나가겠다 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백성의 뜻에 따르겠다는 말도 한다. 한꺼번에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모순된 말이다. 개혁주체들이 지나치게 여론에 민감하여 이런 모순된 말을 하면 이들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개혁에 대한 의지가 마모되었다고 믿어도 틀림없다.

한양대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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