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민심이 떠난 정치

지난 95년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4천억원을 터뜨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박계동 전의원이 최근 택시기사로 변신했다는 소식이다.

14대 국회에서 참신한 정치신인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15대 총선 낙마에 이어 16대 총선 때는 선거법 위반혐의로 출마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근무 후에는 매일 국회 도서관에 들러 국내 정치시스템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는 그는 "매년 156조원의 세금이 탈루되고 수입.지출 표준화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2천600억원이 새나가고 있다"고 한숨을 지었다.

◈한심한 정치권 생태

박 전의원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요즘 우리 정치권의 행태는 한마디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전대미문의 의료계 집단 휴.폐업 사태에 이어 사상 초유의 금융대란이 예고돼 있는 등 사회 각 분야가 술렁이고 있으나 정부는 '집단 이기주의'라고만 몰아 붙일뿐 뾰족한 해법은 고사하고 되레 혼란을 부추기는 일까지 빚고 있다.

롯데호텔 노조파업장에 대한 강제진압을 둘러싼 공권력의 형평성 논란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엄정한 법 집행"이라고 강변했으나 강자와 약자, 있는 자와 없는 자에 대한 법의 잣대가 다르다는 여론도 만만찮았던 게 사실 아니던가.

집권당인 민주당도 시국현안에는 눈 뜬 장님이나 마찬가지다. 당 중진들은 벌써부터 두 달 뒤의 전당대회에만 골몰하고 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정치력 발휘나 해법이 나올 리 만무하다.

◈과연 국정운영능력 있나

자민련은 어정쩡한 공조 파트너인 민주당의 힘을 빌려 교섭단체를 구성해 살아남으려는 몸부림 외에는 아무 것도 안중에 없어 보인다.

수권정당임을 외치는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은 어떤가. 의료대란 해법을 위한 상생정치(相生政治)의 모습을 반짝 내보이도 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최근 이회창 총재의 행보를 보면 오직 대권 만을 그리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국민들의 고통보다는 표 밖에 안중에 없는 듯하다. 이 총재 부인은 한술 더 떠 벌써부터 당 소속 국회의원 부인들에게 밥을 사는 등 '대권내조'에 열심이다. 앞으로 대선은 2년 반이나 남았는데 말이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총리 청문회에 대한 비판을 벌써 잊은 듯 6일부터 시작될 대법관 청문회도 준비 소홀로 더한 '부실'을 예고하고 있다.

◈마음 콩밭, 시국현안 외면

오늘부터 시작되는 임시국회도 추경안 처리, 정부조직법 및 약사법 개정문제,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 4.13총선 수사 국조권 발동 등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어 험로가 예상된다. 굵직한 현안은 뒷전인 채 또다시 대결과 갈등으로 되돌아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정치권의 구태는 4일 참여연대가 밝힌 지난해 국고 보조금의 사용내역을 살펴보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민주, 자민, 한나라당 등 3개 정당은 99년도에 265억원을 정당보조금으로 지급받아 이 중 절반에 가까운 123억원을 멋대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일은 국민들의 혈세인 이 돈의 상당액이 총재의 홍보용 시계 제작, 각종 성금.수재의연금 등 제 집 장롱 속 돈처럼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정말 사방을 둘러봐도 국민을 편하게 해 주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의료대란, 금융파업 그 희생자는 정치인들이 하늘처럼 받들겠다던 국민들인데도 말이다. "국민들의 진솔한 마음을 헤아리고 정치가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날이 오기만을 바란다"는 택시기사 박계동의 말을 정치권은 새겨듣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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