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순백의 공간…목탄의 자유로움

전시회 기획에 까탈스러움을 갖고 있는 공산갤러리 이희수대표는 최근 한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평소에는 그가 작가를 닦달(?)했으나 이번에는 그가 작가의 까다로움에 고개를 젓고 말았던 것. 전시회를 갖자고 수차례 설득한 끝에 전시회 일정을 잡았으나 그 후에도 팸플릿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트는 바람에 애를 태우기도 했다.

이씨를 애먹인 작가는 지역 미술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전영발씨(55). 10대때 이미 예술성의 정점에 닿아 일찌감치 천재성을 발휘했던 전씨는 6일부터 17일까지 공산갤러리(053-984-0289)에서 두번째 전시회를 열고 있다. 종이 위에 목탄으로 그려나간 선묘화 15점을 선보인다.

순백의 공간 위에 호흡처럼 펼쳐진 선들은 자연순리적이며 모태를 떠올리는 생명의 순환을 드러내고 있어 작가가 지향하는 정신을 엿보게 한다. 목탄 하나로 한번에 그어나간 선은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힘차게 꺾여지면서도 가늘고 굵음, 짙음과 엷음을 모두 담아 한없는 해방감으로 선묘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2년전인 98년 12월 공산갤러리 개관기획전으로 열린 그의 전시회는 지역 화단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전시장에 내걸린 그의 중·고교 시절 작품은 구상에서 추상까지 거침없이 오가며 치밀한 역학적 구조와 밀도있는 조형감각, 세련된 색채 구사로 충격을 던져주었다. 20여년만에 열린 그 전시회는 70년대 중반까지 대외활동을 하다 은둔에 가까운 생활로 접어든 이후 작가가 처음 선을 보는 자리여서 대단한 화제가 됐었다. 촉망받는 청년화가로 천재성을 인정받다 돌연 자취를 감춰 동료들과 선후배 사이에서 '전설'처럼 입에 오르내리던 그는 예순을 바라보는 이제 미술세상 한 켠에 살짝 발을 얹어놓기 시작한 것일까? -金知奭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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