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아이를 낳아야 할 지 고민입니다. 어른들이 손자를 원하는데 꼭 사내아이를 낳는다는 보장도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21세기에 아들로 대를 잇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여성의 시대'라고 떠들어대는 21세기 초입. 속칭 '딸기 부모'(딸기=딸·기집애의 줄임말)들의 아들 콤플렉스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20, 30대 젊은 주부들 조차 "어른들 때문에" "남편이 원해서" "아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하며 아들 욕심을 낸다. 먼 거리를 마다 않고 용하다고 소문난 한의원을 찾아가 아들 낳는데 효험 있다는 약을 지어 먹고, 법으로 금지된 성감별을 해주는 병원을 찾아 뱃속의 딸아이를 죽이는 일까지 계속하고 있다.
특히 보수적인 영남지역의 남아선호 사상은 유별나기로 소문나 있다. 얼마전 통계청이 발표한 1998년 출생성비(여아 100명 당 남아 수)에서 대구가 116.5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고, 셋째 아이 이상은 울산이 205.1로 가장 높았다.
이 지역의 '딸기 부모' 치고 속 상하는 일 한두가지 안 겪어본 이가 어디 있을까?연이어 딸을 낳았을 때 주변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된 반응은 "이제 걱정할 것 없네요"이다. 나중에 애들이 커서 결혼할 때쯤엔 남자보다 여자 숫자가 더 적어 마음대로 상대를 고를 수 있을 것이란 뜻. 어린 아들이 있는 사람들은 당장 사돈 맺자고 우스갯소리를 해댄다. 그리곤 끝맺는 말. "뭐, 애 좀 키워놓고 하나 더 낳으면 되죠".
연년생으로 두 딸을 낳은 이인숙(35·대구 비산동)씨. "둘째 딸을 낳고 시어머니가 집에 오셔서 구완을 해주셨어요. 일주일쯤 지나 시어머니가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비가 와 빨래를 걷으러 나갔더니 이웃 아주머니들이 아들을 낳았으면 그러겠느냐며 사사건건 말들이 많아 정말 속 상했어요"
남들은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이씨는 이제 초등학생이 된 두 딸이 너무 예쁘고 자랑스럽다며 흐뭇해한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 스트레스는 완전히 사라진게 아니다. 근래 들어 "아들 하나 낳자"는 남편의 요구가 잦아졌기 때문.
이씨도 아들만 낳을 수 있다면 출산의 고통쯤이야 참을 수 있지만, 또 딸을 낳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고 어린 생명을 낙태시키는 일 만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녀의 절박한 심정.
'딸기 부모'들에겐 온갖 아들 낳는 비법(?)이 사방에서 전수된다. "힘이 약해서" "밤마다 술만 마시기 때문에" 아들을 못 낳는다는 소리를 듣곤 하는 남성들에겐 어떤 음식이 좋고 잠자리는 언제 하라는 둥 성공(?)한 경험자들의 충고가 이어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것들이 검증되지 않은 설에 불과하다고 했다. 한의사 김모(42)씨의 경험담. 딸 둘을 본 뒤 선배 한의사를 찾아가 아들 낳는 약 처방을 얻어 왔다. 그리곤 정말로 아들을 낳았다. 이 처방이 효과를 본 것일까?
"약 처방을 받아온 날 밤에 아이가 생겼습니다. 약은 아예 지어보지도 못했죠" 김씨는 그 처방전이 효과 있는지는 아직도 시험해 보지 못했다고 했다.
둘째는 아들로 낳고 싶은 임신부들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산부인과 의사에게 "걱정 안 해도 될까요?" "씩씩하게 생겼나요?" 하며 은근슬쩍 묻곤 한다. 그러다 의사의 말을 마음대로 해석해 아들인줄 오해했다가, 낳고 보니 딸이라 아이가 바뀌었다고 항의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지곤 한다는 것이 병원측 이야기.
얼마전 결혼한 박은영(28·포항시 송정동)씨는 단호히 말했다. 한살 적은 남편과 딸 하나만 낳았으면 좋겠다고. "요즘 아들 좋을 게 뭐 있나요? 장남도 부모와 따로 살면서 오히려 처가와 가까이 지내는 경우가 많잖아요. 엄마에겐 살갑게 잘 해주는 딸이 아들보다 더 좋을 것 같아요"
여성학자들은 남아선호 의식을 없애고 남녀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선 호주제 폐지 등 법적·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여성의 시대'라는 21세기. '딸기 부모' '딸딸이 부모'라는 별칭이 없어지는 날은 언제쯤일까?
金英修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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