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료계 초강경...장기화 예고

지난달 29일 대형병원 전공의 파업으로 재연된 의약분업 사태가 대학병원 교수들의 외래 진료 중단과 동네의원의 재폐업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국민부담 증가를 전제로 한 정부의 대폭적인 양보에도 불구, 파업을 주도하는 전공의들이 강경 입장을 누그러 뜨리지 않아, 의료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전공의가 사태를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의사협회조차 무력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사태 해결을 비관케 하는 중요한 점. 이래서는 정부가 대화할 상대마저 갖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이며 이번 투쟁을 주도해온 전공의 비상대책위(비대위)는 파업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준비에 들어갔다.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에 대한 항거이며 의료정책과 관련된 정부의 사고 전환을 요구하는 사활을 건 투쟁"이라고 규정한데서도 알 수 있듯, 양보없는 투쟁을 예고하고 있는 것. 비대위는 "의료수가 인상, 전공의 처우개선, 의대 정원 감축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정부안은 의료정책에 대한 근본 해결책이 아닌 사태 무마를 위한 졸속행정의 극치"라고 일축했다.

비대위는 "현재의 의협 상임 이사진은 7만 의사의 신뢰를 상실하고 이미 사퇴를 표명, 의사 대표 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의협 집행부를 비난하고,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요구했다. 그간 온건파로 분류됐던 의협 상임이사진을 투쟁 지도부에서 제외하고, 의쟁투.개원의.전공의협의회.전임의협의회.교수협의회.학생비대위 등 대표들로 구성해 강경투쟁으로 몰고 가겠다는 것.

또 비대위는 새 투쟁 지도부 내에 공개되지 않은 2선 지도조직을 구성, 투쟁을 실질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계 지도부가 강경파로 재편되고 초강경 투쟁을 계속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병원들의 재정난은 심각해, 이미 대학병원들조차 직원 급료조차 주지 못할 상태이며, 중소병원은 부도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데도 전공의와 전임의들은 월급 반납으로 병원의 재정난을 덜어 주면서라도 정부가 굴복할 때까지 장기파업을 해야 한다며 강성론을 펴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여러가지 문제가 속출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 보다 환자들의 생명이 위협 받겠지만, 전공의 장기 파업, 의대생 자퇴 등으로 전문의 및 새 의사 배출이 타격을 받을 경우 의료 인프라가 상당 부분 와해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도 우려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의료계 내부나 정부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이런데도 의료계나 정부가 제시할 더 이상의 협상카드가 없어 사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정부에게 남은 것이라곤 폐파업에 대해 법대로 대응하는 것 뿐. 하지만 그것 역시 실행은 불가능하리라 여겨지고 있다. 전공의들을 사법처리할 경우 그 스승인 교수들이 응급실조차 포기하겠다고 나서는 등 정말 총체적 전면전을 맞게 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정권으로서는 그렇다고 의료계 요구에 굴복해 의보수가를 더 올린다거나, 임의분업 형태로 전환하기 위해 약사법을 개정한다든가 하는 것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그럴 경우 집권 후반기의 권력 누수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 의료비 추가 부담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제 의사 파업은 본래의 색깔과 달리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됐고, 그런 만큼 풀기가 더욱 어려워져 장기화될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의료 소비자인 시민들만 생명까지 내줘가며 희생돼야 할 판국이다.

李鍾均기자 healthc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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