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 10년만에 이라크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때문에 미국 등 봉쇄 주체들과의 사이에 마찰음도 이어지고 있다. 또 이런 움직임이 미국 중심의 일극(一極) 체제 붕괴와도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어 주목된다.
처음으로 이라크를 찾은 외국 원수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 OPEC 의장국 대통령으로서 중동 순방에 나선 차베스는 지난 10일 이라크를 전격 방문, 봉쇄망을 깨는데 앞장섰다.
그의 방문에 앞서 미국은 "이라크 방문은 부적절한 행동이며, 유엔과의 사전 협의도 거치지 않은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나 차베스는 이라크 도착 연설에서 "베네수엘라는 주권국가이기 때문에 국가의 이익을 위해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틀 뒤 인도네시아 방문 때는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는 부당한 것, 그 나라 국민 특히 어린이들에게 지나친 고통을 주고 있다"면서 "이제 경제제재가 해제돼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강조하기도 했다차베스에 이어 이라크를 방문하겠다고 천명한 또다른 국가 원수는 인도네시아의 와히드. 그는 11일 자국을 찾아 온 차베스와의 12일자 정상회담 뒤 "올 여름이 끝나기 전에 이라크를 방문해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회담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걸프전 이후 가해진 유엔의 이라크에 대한 제재가 곧 해제되기 바란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상황이 이같이 되자 미국은 또다시 인도네시아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12일 와히드의 발언에 대해 "매우 분별없는 부적절한 일"이라면서 "만약 그가 이라크 방문을 강행하면 인도네시아의 외교와 도덕성이 크게 손상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방문을 자제하라는 미국의 충고에 귀 기울이는 것이 여러모로 이로울 것" "와히드에게는 아직도 해야할 많은 일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등의 표현으로 협박했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은 미국이 세계의 '대장 노릇'을 하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말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는 미국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형태였으나, 최근들어 중국이 급부상하고 러시아가 태도를 바꾼 가운데 프랑스·독일·인도 등도 가세해 다극화로의 전환을 지향하고 있다.
미국은 2차대전을 계기로 세계 주도권을 장악, 특히 공산권이 붕괴된 이후 지금까지 독점적 지도력을 휘둘러 왔다. 그러나 경제·군사 등 분야에서의 정세 변화로 그같은 체제는 끝나고, 앞으로는 몇개의 큰 힘들이 상호 견제하는 다극화시대가 닥칠 것으로 예상돼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은 걸프전이 끝난 후에도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견제 활동을 계속, 잇따른 폭격으로 지금까지 이라크인 302명이 숨지고 909명이 부상했다고 이라크측은 밝히고 있다. 12일에도 미국·영국의 전투기들이 이라크 남부에 있는 식량창고를 공격, 민간인 2명이 숨지고 19명이 부상했다.
최근에는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가 중단돼야 한다는 국제 여론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외신종합=朴鍾奉기자
paxkore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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