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제가 바로 영훈입니다." "영훈아, 어머니는 7년전 지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너를 찾으셨다."
15일 오후 코엑스(COEX) 3층 컨벤션센터 홀에서 50년만에 만난 주영관(72)-영훈(69) 두 형제는 한참동안 부둥켜안은채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 영훈씨는 북한에서 함흥화학공대 출신의 공학박사로, 상급(장관급) 직책인건재공업부장을 지내는 등 현 방남단 중 최고위직을 지냈으며 북한-독일간 시멘트합작사업을 주관하기도 했던 인물.
형 영관씨는 남한에서 합동통신,대한매일,세계일보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으며유정회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난 만나도 울지 않고 껄껄 웃으면서 맞이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막상 동생의모습을 보니까 절로 눈물이 나더라구."
6.25가 발발한 지난 50년 동국대 정치경제학부 학생으로 의용군에 끌려간 뒤 덕성여대 수용소에 갇혀있던 동생을 찾아가 철조망 너머로 잠깐 면회했던 것을 마지막으로 50년동안 떨어져야 했던 두 형제는 백발이 성성한 칠순이 돼서야 서로를 마주하게 됐다.
동생 영훈씨는 기분이 어떠냐는 기자단의 질문에 "기자들은 이 기분을 상상도할 수 없다"며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다시 만나게 돼 영예롭고 기쁠따름"이라며 연방 형의 손을 부여잡았다.
"20년 같이 살고 50년 동안 헤어져 있어 예전과 같은 모습과 성격이 아니면 어쩌나 하고 내심 걱정했었는데 동생이 예전 그대로의 소탈하고 명랑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신기하게 만해. 어쩌면 그렇게도 얘기가 술술 잘 풀려나오는지..."
50년의 세월도 혈육의 정을 끊어놓기는 부족했는듯 두 형제는 어제 만난 사이처럼 서로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냈다.
그러나 하루도 빠짐없이 동생 영훈씨를 그리다 지난 93년 93살의 나이로 눈감은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주변은 또다시 눈물바다가 됐다.
"너와 헤어진 이듬해 나도 바로 국군 연락장교로 입대해 너를 만날수 있을까 찾아 헤매었단다. 서로 적군으로 총부리를 맞대더라도 혹시나 전쟁터에서라도 만나기를 고대했었는데 이제야 이렇게 만나게 됐구나."
형 영관씨는 "7개월전 위암수술을 받고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꿈에도 그리던 너를 만나려고 이렇게 살아있었나 보다"라며 감격스러운 듯 동생의 얼굴을 몇 번씩이나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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