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보, 그동안 속절없이 살았시오

○…부산에서 올라온 김일선(81)씨는 북한의 아내 오상현(77)씨가 자신의 가슴에 파묻히며 "여보, 그동안 속절없이 살았시오" "우린 이제 어찌합니까"라고 울면서 가슴을 치자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북측의 여성 안내원과 취재기자들도 이들의 상봉장면을 지켜보다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아닌데…아닌 것 같은데…"

남쪽의 남편은 50년 새 너무 늙어버린 북의 아내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아내의 얼굴에 26세의 꽃다웠던 모습은 간 데 없고 깊은 주름만 속절없이 패 있었다.평양 방문단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사연으로 관심을 모았던 이선행(81), 이송자(82)씨 부부의 15일 가족상봉 광경은 의외로 차분했다.

이씨 부부는 북에 처자식 또는 남편과 자식을 두고 내려온 뒤 남쪽에서 결합해 살아오다 이번 방북단에 함께 선정된 화제의 부부다.

이씨 부부는 이날 2시간 동안 각각의 북쪽 가족만을 만나 회포를 풀었다.

선행씨는 50년전 피란길에 대동강가에서 헤어졌던 부인 홍씨를 만난 순간 처음에는 선뜻 알아보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다 홍씨 오빠의 이름을 확인한 뒤에야 아내임을 확인하고 어깨를 감쌌다.

두 사람은 너무나 변해버린 서로의 얼굴에 눈물도 메말라버린 듯 고개를 떨구었다선행씨는 "혼자서 애들을 키우느라 고생 많았고…"라는 말만 여러번 되풀이 하며 홍씨를 위로했다.

선행씨로부터 불과 5m 가량 앞에는 남쪽 부인 송자씨가 반세기만에 큰 아들 박의식(61)씨를 만나 눈시울을 붉혔다.

송자씨는 남편을 찾아 1947년 월남했다가 남편도 찾지 못하고 이듬해 38선이 확정되면서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1.4후퇴 때 1주일만 백리 밖에 피란 가 있으면 무사하다고 해서 떠났는데 이제야 돌아왔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누나말을 듣지 않았을텐데…"

한때 고혈압으로 여행불가 판정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이산가족 방문단에 포함된 김상현(62.서울 송파구 마천2동)씨는 누나 상월(70)씨와 조카 이예숙(50)씨를 만나 50년간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풀었다.

황해도 수안군이 고향인 김씨는 2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나 바로 윗누나로부터 귀여움과 각별한 사랑을 받은 탓인지 한 눈에 누나를 알아보고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아홉살 때처럼 누님에게 그냥 안겨보고 싶은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소원을 풀었다"며 기뻐했다.

○…"아버님.어머님, 제가 광산 김씨 문중의 대를 끊지 않았으니 걱정말고 편히 눈을 감으십시오"

5대 독자이면서 6.25 전쟁 당시 18세의 나이로 인민군에 징집, 3개월만에 전쟁포로로 잡혀 거제도수용소 등지에서 온갖 고초를 겪다가 53년 전쟁포로 교환 때 결국 반공포로로 남한에 잔류하게 된 김장수(68.강원도 화천군 간동면)씨.

평안남도 안주군(현재 안주시)이 고향으로 50년만에 누나 봉래(72)씨와 여동생 학실(64)씨를 만난 김씨는 "3년 뒤 꼭 돌아오겠다고 홀어머니에게 약속해 놓고 이를 못지킨 게 그야말로 천추의 한이 되었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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