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마지막 날(18일) 아침, 순덕 언니는 떨어지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우는 나를 애써 달랬다. "우리 눈물 보이지 말자. 남북이 화해했으니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올 거야". 그래도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방북 일정 동안 언니를 만난 것은 고작 10시간. 하지만 언니와 함께 했던 순간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었다.
지난 15일 고려항공기속, 하늘에서 본 평양은 내 기억 속의 평양이 아니었다. 6.25로 남쪽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21년을 산 평양의 도심은 마치 서울처럼 변해 실망스럽기도 했다.
순안공항에서 고려호텔로 가는 버스. 북측 안내원이 창 밖을 가리키며 "저곳이 할머니의 고향인 인흥리"라고 말해 다시 한번 놀랐다. 기와집과 옥수수밭이 널려있었던 한적한 시골이 빌딩숲으로 변해 있었다. 꿈에 그리던 인흥리가 이토록 변했을 줄이야. 하지만 내 고향에서 언니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흥분되게 했다.
마침내 집단상봉 시간.
"내 언니 강순덕씨가 맞나요"
눈물을 닦으며 다시 한번 쳐다 보자 내 앞에는 이가 빠지고 허리가 홀쭉한, 세월에 찌든 늙은 할머니가 언니로 앉아 있었다.
"언니......"
옛 모습이라곤 찾아 볼 수 없다는 슬픔도 잠시, 우리는 와락 부둥켜 안고 한동안을 통곡했다.
정신을 차린 나는 서둘러 내 사진이 담긴 손목 시계부터 언니에게 건넸다. "내가 보고 싶을 땐 시계를 보라"고 하자 언니는 "언제나 네 얼굴을 볼 수 있어 좋다"며 기뻐했다.
식사 후 언니와 헤어져 호텔방에서 집에 전화를 하려다 서울 땅이 아님을 알고 성급히 끊었다.
16일 오전9시, 준비해 간 사진들을 보여 주자 전쟁 때 유일하게 북한에 남았던 언니는 남한 가족(8남매)들의 소식을 물었다. 부모님과 다섯째인 여동생 심자가 죽었다는 말에 언니는 망연자실, 나를 붙잡고 몸부림쳤다.
한참 뒤 언니가 울음을 멈추자 나는 가지고 간 구두를 언니에게 신겼다. 꼭 맞았다. 너무 기뻤다. 어릴 때 언니의 새 신발을 몰래 신곤 하던 기억이 나 이번에 내 발 치수에 맞춰 사가지고 간 것이다.
오후에는 대동강을 유람했다. 강변길을 걸으며 어린 시절 언니와 함께 했던 추억을 더듬었다.
이별을 하루 앞둔 17일은 우연히도 언니의 생일이었다. 뜻밖에도 호텔에서 언니의 생일 파티를 주선해 주었다. 내게는 작은 축복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걱정마. 곧 통일이 돼 다시 만나게 될 거야"라고 확신에 차 위로하던 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이 탓일까. 자꾸만 이번 만남이 마지막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에 어젯밤 역시 하얗게 지샌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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